‘우리나라만은 절대 안전하다’는 나 홀로 교만이 위험 빠뜨려
[보안뉴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 회장]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현인들도 전쟁 자체는 싫어했지만, 그 불가피성이나 중요성에 대해서는 결코 의문을 품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래서 인류 역사를 아예 전쟁사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이중 현대전 양상에 대해 전쟁사가(戰爭史家)들은 3단계로 구분해 설명했다. 즉, 제1세대 전쟁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구분했으며, 대규모 소모전인 1차 세계대전은 2세대 전쟁으로, 그리고 3세대 전쟁은 기동력과 기습이 특징인 2차 세계대전으로 대별된다.

[이미지=iclickart]
그러나 냉전의 종식으로 인해 끝난 줄 알았던 전쟁은 2001년 9월 11일 슈퍼파워 미국에 퍼부어진 가공할 테러 공격으로 인해 전 세계를 새로운 형태의 전쟁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학자들은 이 9.11 테러를 바로 4세대 전쟁의 본격 개막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했다. 지금 이 개념은 미래의 군사적 위협으로서, 서로 다른 전쟁양식들의 상호 교차적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멀티모드’ 활동 형태의 21세기 전쟁과 테러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한마디로 4세대 전쟁이 수행하는 목표는 1~3세대 전쟁처럼 지형의 탈취나 물리적 파괴가 아니라 적대국의 내부 붕괴를 겨냥하며, 기존의 전술교리, 교육, 훈련, 장비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사고와 발상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하이브리드 전쟁’이라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유연하고 지능적인 적이 목표 달성을 위해 특정한 시기에 동시적으로 다른 형태의 전투를 통합하여 수행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남중국해 도발, 북한에 의한 해킹, 가짜뉴스 살포, 선전전 등을 통해 대남공격을 전개하는 것 등을 하이브리드 전쟁의 전형으로 보고 있다. 일례로, 레바논의 반군세력인 헤즈볼라가 2000년대 초반 막강한 전력의 이스라엘에 맞서기 위해 무려 6년 동안 이스라엘군을 연구해 왔다. 연구를 바탕으로 취약점을 파악한 후에 이란과 시리아의 지원 하에 벌어진 전투를 통해 이스라엘을 철저히 농락했는데, 이를 ‘하이브리드 전쟁’의 성공적 사례로 분석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냉전시대가 ‘제한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 전쟁의 트렌드는 ‘하이브리드 전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규전 외의 영역으로 인식됐던 비정규전과 테러 등이 이제는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그래서 미군에서는 하이브리드 전을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하나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전쟁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1, 2차 세계대전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전쟁이라면, 4세대 전쟁에서 가장 대표적인 투쟁방식은 바로 영토의 경계도, 전시와 평시의 경계도 무너지는 ‘하이브리드형 테러리즘’이다. 그래서 독일의 정치철학자 ‘뮌클러’는 이런 전쟁을 ‘윤곽선이 사라진 전쟁’이라고 불렀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인 ISIS가 거점이 붕괴되는 등 급속히 세력이 약화되고 있지만, 이를 결코 테러의 근절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테러는 마치 교통사고처럼 근절되기보다는 억지의 대상이 될 뿐이며 지금까지의 양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또 다른 새로운 방법이라 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형 테러’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들어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에서 보듯, 시리아, 이라크를 넘어서는 유럽의 주요 도시 테러가 불가측성, 다양화라는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향후 세계 전역으로 확장되는 테러의 성격을 미리 가늠할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ISIS와 같은 국제 테러집단이나 반군세력 등 비 국가 행위자들은 사이버 공격, 가짜뉴스 유포 등을 통한 정보전, 심리전, 혼란 공작에 대리전 양상까지도 가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국가가 통제해온 대량살상무기(WMD)를 탈취하거나 밀반입해 국가를 위협할 가능성도 있으며, 심지어 갱 등 조직범죄 집단도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21세기 인류의 새롭고 대표적인 투쟁방식이라 할 수 있는 테러리즘은 이처럼 더욱 다양한 ‘하이브리드형’ 방법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이미 2017년 이후 중동지역에서 수세에 몰린 ISIS 핵심지도부는 내부 투쟁역량을 또 다른 테러 양상으로의 변질을 시도하고 있다. 공격목표가 무차별적이며, 상대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 약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전략적 이익을 취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이는 공포의 확산을 통해 국제 연대의 균열을 초래하고, 전 세계에 흩어진 잠재적 지하디스트인 ‘외로운 늑대’들에 대한 동기 부여를 통해 잠재적 지지층 및 테러리스트 세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제 우리도 테러의 청정지대라는 막연한 안이함보다는 안보와 관련한 모든 영역에서 다각적이고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새로운 전쟁 개념으로서 ‘하이브리드형 테러’ 위협을 인식하고, 새로운 공격기술에도 언제든지 직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논의하고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나라만은 절대 안전하다’는 나 홀로 교만이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글_ 이만종 한국테러학회 회장·호원대 법 경찰학부 교수(manjong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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