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미세먼지가 극심하단다. 민감한 체질도 아니고, 건강에 신경 많이 쓰는 성격도 아닌데 나라에서 차비까지 면제시켜주는 걸 보니 괜히 목이 칼칼해지는 느낌이다. 집 서랍에 있던 아무 마스크나 쓰고 나왔더니 과학에 몸담으신 취재원께서 일반인인 기자의 무지를 날카로운 비유로 지적한다. “미세먼지가 심한 때에 일반 마스크를 쓰는 건, 물 뿌리는 데 그물로 막는 것과 같아요.” 그러면서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쥐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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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미세먼지가 옛날에도 다 있던 건데 그땐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라고도 한다. 실제로 자료를 찾아보니 환경부가 미세먼지를 대기오염물질로 규제한 것이 95년의 일이다. 95년이면 아직 성장이 진행 중인 분홍빛 폐로 온갖 공기를 빨아들일 나이였다. 게다가 슬램덩크라는 만화 열풍 때문에 농구도 열심히 했던 때였다. 모래 운동장 농구 코트에 자욱했던 먼지가 떠오르자 갑자기 가래라도 끌어올려 뱉어야 할 느낌이지만, 20년 전 들이마신 먼지가 나올 리 없다.
지식이 쌓일수록 미세먼지 같이 감쪽같이 숨어있던 유해물질들이 발견되니 유익한 건 맞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마스크 줄이 귀뿌리의 연한 살들을 따갑게 쓸기라도 하면, 차라리 모르는 게 속 편하겠다, 라는 생각이 난다. 미세먼지란 게 보이지 않으니 이런 생각은 더욱 힘을 받고, 실제로 거리에는 마스크 착용 안 한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한다. 서서히 죽이는 살인자라는 미세먼지라지만, ‘그깟 수명 몇 년쯤’은 아깝지 않거나 죽어가는 게 실감나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려면 익숙함에 생채기를 내서는 안 된다. 대단한 지식이라고 할지라도, 수십 년을 앞선 선구자의 혜안이라고 할지라도, 익숙함이라는 절대 권력을 꺾는 건 기적에 가깝다. 대중적인 변화라면, 미세먼지가 사람을 서서히 죽이듯, 긴 시간을 두고 기획해야 한다. 그래서 의미 깊은 영향력은 천재적인 지식과 획기적인 발견보다 인내를 더 필요로 한다. 그 영향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몇 배의 인내가 더 요구된다.
사이버 보안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앞만 보고 살아가는 데에 익숙하고, 생산성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데에 익숙하다. 지름길을 발굴할 때 혁신가라고 불리며, 착하게만(우직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거부감 없이 나눈다. 보안은 이 모든 것에 물음표를 붙인다.
지름길은 취약할지 모르니 일단 닫아두거나 없애자, 라고 하는데, 사실 이번에 큰 이슈가 된 멜트다운과 스펙터 취약점도 CPU 내의 ‘지름길’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를 고치면, 역시나, 속도가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보안은 과도한 업무 – 즉 지나친 생산성 – 로 인해 직원들이 보안 사고를 일으킬 확률이 높으니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장님들 듣기 딱 싫은 메시지다. 컴퓨터도 보안 때문에 느려졌고, 직원들 생산성도 안전을 위해 하향조정해야 하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세계 경제 포럼에서도 사이버 보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만큼 이것이 ‘신지식’인 건 맞는데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통신사들이 미세먼지 관련 경고를 개인 휴대폰을 통해 삑삑 울려대도 마스크 안 쓰는 사람이 넘쳐나는 것과 똑같다. 사람들이 안전 불감증이라? 자기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서? 안일함과 ‘귀차니즘’이 팽배해서? 뭐, 다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늘 그래왔고, 어쩌면 사이버 보안 쪽에서, 변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내’를 잊은 것일 수도 있다.
인터넷이 68년에 태어났으니, 정보보안은 이제 50년 정도 된 새로운 분야다. 사람들이 도무지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아직 귀가 열릴 만큼 충분한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이다. 아직은 화를 낼 때도 아니고, 조바심을 낼 때도 아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들에게 “아빠 없으면 네가 남자니까 식구들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긴 하지만, 내일부터 격투기 도장에 보내진 않는다. 당분간은 ‘식구를 지키는 게 뭔지’를 더 보여주고 체험하게 해주는 데 아빠가 더 노력해야 할 때다.
하지만 자식도 아니고 식구도 아닌 생판 남인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인내라는 게 무궁무진하게 샘솟진 않을 것이다. 그럴 땐 보안 담당자로서 멀리 보고 오늘 하루 내가 해낸 일들에 대해 스스로 격려하고 칭찬하는 습관이 도움이 된다. 보안 교육 진행했더니, 직원들이 하품이나 하고 있었던가? ‘괜찮아. 천 번 반복해야 할 일을 오늘 드디어 시작한 거야. 그 정도면 잘 했어.’ 관리자용 비밀번호 공유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사장님이 앞장서서 전체 공개를 하고 있었나? ‘괜찮아. 그 사건이 있어서 한 번 더 교육할 기회가 생긴 거야.’ 오늘은 별다른 일이 없이 지나갔나? ‘괜찮아. 내 몸에 밴 보안의 습관이 표현됐을 것이고, 누군가 한 명쯤은 기억할 거야.’
물론 멀리 보라는 건 기대감을 다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 몸담고 있는 사이버 보안의 그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자신감 있게 믿으라는 것이다. 그 수많은 보안 전문가들이 ‘미래 사회의 핵심요소는 보안’이라고 외치는데, 그 말을 스스로 부여잡자는 것이다. 변화는 분명히 온다. 이 믿음이 없는 ‘자기 칭찬’은 공허한 정신 승리이거나 자기 합리화만 반복하게 한다. 허무가 누적되면 힘이 빠진다. 변화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저 ‘괜찮아’를 에너지로 바꿔준다.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하면, 우리가 지금 여러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는 불편함이 오히려 우리의 선구자적 존재감을 증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세먼지 휘날리는 밤, 허무와 짜증을 잠시 거두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자. 우린 할 만큼 하고 있고, 그걸로 충분하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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