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기자의 기록 :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는 때가 오기까지

2017-08-04 13:52
  • 카카오톡
  • 네이버 블로그
  • url
소프트웨어 산업, 진정한 전문가가 있을 수 없는 격전지
떴다 사라졌던 CEO들에 대한 기억...불안했던 리더의 자리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오래 전의 일이다. 한 번은 컬리넷 소프트웨어(Cullinet Software)의 창립자인 존 컬리네인(John Cullinane)과 아침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컴퓨터월드(Computerworld)라는 소프트웨어 및 컴퓨터 관련 업체에 막 취직한 신입 기자였고, 컬리네인은 가장 중요한 광고주였다.


[이미지 = iclickart]

그 긴장되는 아침식사가 끝났을 때 컬리네인은 새내기 기자인 필자에게 “새 소프트웨어 소식에 그렇게 열을 올리고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새 소프트웨어란 당시 뜨겁게 달아오르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relational database)였다. 당시 가장 소프트웨어를 많이 구입하던 메인프레임 사용자들은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지 않았고, 컬리넷 소프트웨어가 개발했던 IDMS를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6년 어느 날 아침에 일어는 그 대화를 명확하게 기억하는 건, 바로 그 대화를 기점으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물결을 어떻게 해서든 부인해보려는 당대 실력자의 안간힘이 도리어 그 물결이 휩쓸고 갈 미래를 방증한다는 건 초보 기자도 눈치 챌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나 샤프한 기자였던 것만은 아니라, 그 한 번의 사건으로 모든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다행히 그 해에 비슷한 사건이 또 있었는데, 릴레이셔널 테크놀로지(Relational Technology)라는 기업의 부회장인 피터 티어니(Peter Tierney)와 한 차례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그는 당시 자신이 개발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가 왜 그리 선배 데이터베이스 업체들의 혹평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귀띔해줬다.

“데이터베이스 시장은 지금보다 몇 배는 성장할 건데, 그걸 알고 그 사람들은 절 견제하는 거죠. 아니, 오히려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는 또한 익살스럽게도 이렇게 말했다. “새 기자님, 데이터베이스 전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가 말한 전쟁이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는 걸 난 어렴풋이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지금이라고 해서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세상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왔는지 세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IBM의 영업 담당자들도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해 잘 설명을 못 했던 건 기억한다. 데이터베이스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원하는 바로 그 데이터를 콕 집어서 꺼내올 수 있는 건 좋은데, 그게 기업 환경에서 무슨 소용인지를 이해시키는 걸 그렇게나 어려워했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고,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라는 것이 정착되고 나서 소프트웨어 AG(Software AG)라는 업체의 CEO인 스튜어트 밀러(Stuart Miller)와 마주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밀러는 “왜 IBM이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지 모르겠어요. 이미 그쪽 시장은 저희가 꽉 쥐고 있는데 말이죠.”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침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임원진들에게서 그러한 유약한 모습이 있다는 걸 난 그 날까지 몰랐었다.

소프트웨어는 대단히 다이내믹한 분야이며, 리더의 위치에 올랐다는 건 안정적으로 왕좌에 앉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변화의 흐름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쉴 새 없이 뜀박질을 하고 발을 구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 꼭대기에 위치한 이들은 더 처절하고 힘들게 뛰고 또 뛴다. 그때의 기자 경험을 통해 난 오히려 더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직접 보았고, 손꼽히는 천재들조차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소프트웨어 분야의 그 무서움을 피부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치열한 CEO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 중 하나는 매니지먼트 사이언스 아메리카(Management Science America)라는 기업을 이끌고 있었던 존 임레이(John Imlay)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IBM이 소프트웨어의 연구와 조사에 그렇게나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곧 무시무시한 제품이 등장하리라는 것도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회사는 경쟁도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는 만날 때마다 농담이나 하자며 이야기를 딴 곳으로 돌렸던 분이다. 그의 농담은 어쩐지 애잔했었다.

신콤 시스템즈(Cincom Systems)의 창립자인 톰 니즈(Tom Nies)와의 만남도 기억난다. 슈프라(Supra)라는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깊은 고민을 가졌던 분이셨다. 창립자인데도 말이다. 오죽했으면 신입 기자였던 나에게 답도 못들을 걸 알고도 그런 고민을 토로했을까. 또, 컴퓨터 어소시에이츠 인터네셔널(Computer Associates International)의 찰리 왕(Charlie Wang)과의 인터뷰도 인상이 깊었다. 한창 인터뷰 중에 언론이라면 치를 떨고 싫어하는 그의 동생 안토니(Anthony)가 뛰어 들어와 왜 사람을 현혹 하냐며 나에게 삿대질을 했었기 때문이다.

각양각색의 고민과 짐을 떠안고, 각기 다른 삶과 애환과 해소법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만난다는 건 경력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만족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리고 난 그들 모두를 좋아했지만, 알고는 있었다. 아무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그들이 믿음직스럽지 못해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업계라는 게 워낙 예측불허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어쩔 수 없는 불신에 대해 우린 모두 공유하고 있었고, 딱히 거부하지도 않았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꽤나 유해한 일이다. 변화의 최전선에 온 몸을 노출시키는 것과 같다. 아니면 가랑잎 같은 배에 서서 태평양의 파도를 그대로 맞이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이곳에서 성공한다는 건 어느 정도 운도 필요한 일이지만, 서로를 믿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한계일 리가 없어’라는 마음으로 방구석에 앉아 계속 연구하고 몰두하던 이들이 더 오래 살아남았고 성공도 이뤘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갔다. 1992년 난 잠시 휴식 기간을 갖기로 했다. 컴퓨터월드를 떠나는 상황이었지만, 과월호들을 챙기는 건 잊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그 빠른 변화가 기록된 역사까지 뒤로 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챙겼던 컴퓨터월드 1968년 7월호의 헤드라인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소프트웨어 상품에 첫 특허 발행 : 그 영향은?”

참고로 사상 첫 특허권을 따낸 소프트웨어 제작자는 마티 고에츠(Marty Goetz)라는 인물로, 당시 어플라이드 데이터 리서치(Applied Data Research)의 CEO였다. 시장에 데이터콤DB(DatacomDB)와 아이디얼(Ideal)이라는 제품을 내놓았던 기업이었다. 그로부터 세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는 독자분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잡아먹고 있는 시대다. 지금부터의 역사는 우리 후배 기자들이 잘 기록해주시길.

글 : 찰스 뱁콕(Charles Babcock), InformationWeek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Copyrighted 2015. UBM-Tech. 117153:0515BC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헤드라인 뉴스

TOP 뉴스

이전 스크랩하기


과월호 eBook List 정기구독 신청하기

    • 아마노코리아

    • 인콘

    • 엔텍디바이스코리아

    • 핀텔

    • KCL

    • 아이디스

    • 씨프로

    • 웹게이트

    • 씨게이트

    • 하이크비전

    • 한화비전

    • ZKTeco

    • 비엔에스테크

    • 엔토스정보통신

    • 원우이엔지

    • 지인테크

    • 홍석

    • 이화트론

    • 다누시스

    • 테크스피어

    • 경인씨엔에스

    • 슈프리마

    • 인텔리빅스

    • 시큐인포

    • 미래정보기술(주)

    • 비전정보통신

    • 지오멕스소프트

    • 트루엔

    • 인터엠

    • 세연테크

    • 성현시스템

    • 한국아이티에스

    • 케비스전자

    • 아이원코리아

    • 다후아테크놀로지코리아

    • 한결피아이에프

    • 스피어AX

    • 동양유니텍

    • 투윈스컴

    • TVT코리아

    • 프로브디지털

    • 위트콘

    • 포엠아이텍

    • 넥스트림

    • 페스카로

    • 아우토크립트

    • 신우테크
      팬틸드 / 하우징

    • 에프에스네트워크

    • 네티마시스템

    • 케이제이테크

    • 알에프코리아

    • (주)일산정밀

    • 아이엔아이

    • 미래시그널

    • 새눈

    • 창성에이스산업

    • 유투에스알

    • 제네텍

    • 이스트컨트롤

    • 현대틸스
      팬틸트 / 카메라

    • 지에스티엔지니어링
      게이트 / 스피드게이트

    • 주식회사 에스카

    • 에이앤티글로벌

    • 모스타

    • 한국씨텍

    • 넥스텝

    • 레이어스

    • 구네보코리아주식회사

    • 에이티앤넷

    • 티에스아이솔루션

    • 엘림광통신

    • 보문테크닉스

    • 포커스에이아이

    • 메트로게이트
      시큐리티 게이트

    • 휴젠

    • 신화시스템

    • 글로넥스

    • 이엘피케이뉴

    • 세환엠에스(주)

    • 유진시스템코리아

    • 카티스

    • 유니온바이오메트릭스

Copyright thebn Co., Ltd. All Rights Reserved.

MENU

회원가입

Passwordless 설정

PC버전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