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할 수 있는 법 없어 피해 확산에도 속수무책
소득과 생활을 보장하는 안정된 직장!!
모집: 내근관리, 사무관리, 자재관리
자격: 남 40~65세, 여 40~55세. 주 5일근무
공/사직 퇴직자 및 자영업자 우대, 전업주부 환영
급여: 120~220만 가(퇴직금+상여금 400%)
☎○○○-○○○○
(주)○○○
전업주부 김모 씨(35) 씨는 지하철에서 이 같은 광고전단이 꽂혀있는 것을 보고 아이의 학원비라도 벌어볼까 하고 전화를 걸었다. 자신을 유모 부장이라고 소개하는 중년의 남성이 전화를 받고, 그 회사는 전자제품을 수출하는 회사이며, 경리업무를 맡을 여직원을 구한다고 답했다. 김 씨는 이력서를 작성해 회사를 찾았는데, 그 회사는 정수기로 유명한 청호그룹이었다.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전단에는 사무·자재·직영점 관리하는 업무에 명예퇴직·군경간부·기업 임원 출신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많다. 특정종교를 강조하며 가족처럼 일할 사람을 모집한다고 한다. 이런 광고전단은 대부분 청호 등 정수기 업체의 판매사원을 모집하는 것이거나 다단계 판매업체의 영업직원을 모집하는 것이다.
기자는 주부 김 씨로 위장하고 가짜 이력서를 갖고 전단을 뿌린 업체들을 방문했다. 기자가 선택한 곳은 모두 광고 전단에 ‘주식회사’라고 밝히고 있는 업체들이었으며, 방문 전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물어봤을 때 전자제품 수출업체, 보석 마케팅, 물류센터, 유통업체 등이라고 밝혔다.
방문한 회사는 모두 비슷한 분위기였다. 넓은 사무실에 파티션 없이 책상이 놓여 있으며, 책상 마다 작은 상담용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돼 있었다. 상담을 하는 직원들은 익일 혹은 당일 오후 사업설명회가 있으니 설명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만일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 한달 정도 연수 기간이 있으며, 연수를 받고난 후 부서를 배정받게 된다고 했다. 영업직의 경우,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배정해 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연수기간 동안은 영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연수 후 내근직에 있을 때 영업 과정에 대해 모르면 상담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업체 관계자가 설명했다.
내근직이 하는 일이 정확하게 물어봤을 때 관계자들은 뚜렷이 말하지 않았다. 단순히 ‘관리’라고만 했다. 전화 받고 팩스 보내고 상담하는 일이 전부라고 했다. 어떤 내용의 상담인지를 물으니 방문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인사발령 하고, 상담하는 것이라며 사업 설명회를 들으면 업무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본지에 제보된 몇 가지 피해사례를 살펴보면 한 주부는 사업설명회에 참석했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입사하게 됐다. 입사 후 한달 가량 연수를 받았는데, 처음 약속과는 달리 판매실적을 내놓기를 강요했고, 김 씨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고가의 제품을 팔고, 자신도 수백만원 상당의 제품을 사게 됐다.
김 씨는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영업직을 자청했지만, 실적을 올리지 못해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자신과 함께 일했던 사람은 3개월 후 부장이 되어 구인광고를 내고 팀을 조직하고 있다.
이처럼 전단을 통해 다단계 판매 영업사원을 채용한다 해도 마땅히 규제할 방법은 없다. 노동부 고용서비스 혁신단 관계자는 “광고전단에 회사 이름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허가되지 않은 광고지를 배포해 관련법에 의해 벌금 등의 제재를 받을 수는 있다”며 “그러나 이 문제의 핵심인 다단계 판매 형식의 영업직원 모집은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관리직으로 상담하러 갔다가 영업직원이 됐다 해도 본인이 설득 당해 영업을 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고가의 물건을 샀다면 이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 업체가 관할 시·도에 등록된 합법적인 업체일 경우, 정상적인 영업행위로 인정돼 보상을 받을 방법이 없다.
공정거래 위원회 관계자는 “하위 판매원의 매출에 따라 상위 판매원이 일정한 수당을 받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 않다”며 “광고에 나오는 업체들이 ‘주식회사’라고 써 있다고 해도 어떤 일을 하는 업체인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결정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단계 판매업체들의 모임인 직접판매 공제조합 측은 “다단계 판매로 인한 피해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물건을 사는 경우에 많이 발생한다. 지하철에 광고하는 업체들이 모두 다 불법 업체라고 볼 수 없으므로 본인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애 기자(boan1@boa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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