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된 첩보 액션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감독:토니 스콧)는 첩보 영화로써 관객들에게 긴장감과 스릴을 안겨 준 것 이외에 큰 사회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진 작품이다.
이 영화는 ‘국가는 개인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국가조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등장하는 인공위성 추적장면과 CCTV 등은 길을 가다 다시 한번 우리 주위를 둘러보게 할 정도다. 얼마나 많은 감시장비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일까. 하늘에서 거리의 전봇대 위에 설치된 CCTV에서 지하철에서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백화점에서, 학교에서 은행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
주인공 로버트 딘(윌 스미스)은 마피아 보스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책임감을 가진 변호사로 등장한다. 한편, 미 공화당 소속 국회의원 ‘필’을 제거하기 위해 국가안보국(NSA)의 음모가 시작된다.
국가안보국은 국가 안보 강화를 위해 보안법 제정을 주장하며, 감청 및 도청행위를 법적으로 승인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필 의원은 이 법안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해 이들로부터 아무도 모르게 살해당한다. 하지만 그 장면은 철새 영상을 찍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설치했던 CCTV에 찍히게 되고, 이 CCTV를 설치한 자는 바로 주인공 딘의 대학동창인 조류 사진작가 다니엘이었다.
국가안보국이 누구인가. 다니엘이 필의 제거장면이 담긴 필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포착한 국가안보국은 다니엘을 추적한다. 이 장면은 압권이다. 국가안보국은 위성을 이용해 다니엘이 도망가는 위치를 계속해서 추적한다. 통신을 이용해 요원들에게 위치를 알려주고 다니엘은 결국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역주행하다 그만 트럭에 치여 즉사하고 만다.
그 전에 아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란제리 숍에 들린 딘. 다니엘은 도망 중에 딘과 란제리 숍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다니엘은 급한 나머지 딘 몰래 그의 쇼핑백에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슬쩍 집어넣고 달아난 것이다. 딘은 자신이 이 정보를 소지하고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국가안보국은 란제리 숍의 CCTV 장면을 입수해 정밀 조사를 한 후, 딘의 쇼핑백에 테잎이 들어 간 것을 발견한다. 국가안보국은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나간다. 그의 통화기록을 살피고 어떤 대학을 다녔고 어디에 살며 그의 모든 금융계좌 정보를 알아낸다. 그리고 그의 여자관계도 들추어낸다. 심지어 그가 빌려본 비디오 테잎 정보까지 들추어내려 한다. 안보국은 언론을 이용해 그의 모든 것을 보도해 버리고 결국은 부인까지도 그를 의심하게 된다.
안보국 요원들은 딘이 외출한 사이에 집에 몰래 침입해 수많은 도청장치와 몰래카메라를 설치한다. 또, 딘이 사용하는 펜과 손목시계, 신발, 옷 등 모든 곳에 도청장치가 설치되고 그의 차 밑바닥에도 위치추적 장치를 설치한다. 이들은 국가조직이 한 개인을 어디까지 추적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결국, 그들의 집요한 획책으로 딘은 변호사 사무실에서도 쫓겨나고 모든 금융거래 마저 차단당한다. 이들은 딘을 사회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이때 딘을 돕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 전직 국가안보국 출신 베테랑 첩보원이었던 정보 브로커 역의 브릴(진 해크만)이다. 브릴은 냉전이 종식된 이후 자신이 맡았던 국제적 도청행위를 청산하고 변호사에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브릴도 딘과 함께 국가안보국의 추격을 받게 되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된다. 브릴은 자신의 은신처에서 딕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긴 완전히 세상과 고립돼 있지. 정부는 40년대부터 원격통신, 개인은행 거래, 전화도청 등을 해왔어. 유무선 통신이 발달할수록 도청이 점점 쉬워지고 있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벌써 20년 전에 안보국 지하에 있는 컴퓨터는 모든 통화를 감시하고 거기서 ‘폭탄’이니 ‘알라’니 하는 내용이 나오면 모두 저장해놓고 있지. 그리고 별을 관찰하는 허블 망원경은 하나지만 우리 머리 위엔 수백 개의 첩보 위성이 떠 있어. 또 과거엔 도청을 하려면 전화기에 설치를 해야 하지만 요즘은 공중파로 도청을 할 수 있지”라고 말한다.
브릴은 감청과 도청의 합법화가 가져올 무서운 악영향에 대해 국가안보국 국장과 관련 의원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그들이 묵는 호텔과 집에 도청과 몰래카메라를 설치한다. 브릴과 딘은 국장이 곤경에 처해지도록 몰고 간다. 역전을 노린 것이다. 결국, 브릴과 딘은 위기에서 탈출해 다시 자신들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또한 예전 국가정보원 등에서 이루어진 불법 도청사건 등이 폭로되면서 국정원의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은 사건들이 있어왔다.
한편, 용산이나 세운상가를 뒤지면 누구나 쉽게 다양한 도청장비들을 구입할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도청을 할 수 있을 정도다. 휴대폰을 이용한 위치추적도 본인 확인 절차가 필요하지만, 본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승인을 따내면 충분히 당사자 몰래 위치추적도 가능한 것이 요즘이다.
최근 불륜 커플이 늘면서 심부름센터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이때도 빠지지 않는 것이 도청과 위치추적 장치들이다. 이들이 불륜 증거를 확보하는데 요구하는 비용은 대략 복사폰 제작비용 150만원, 몰래카메라나 도청장치 설치비용 200만원, 위치추적장치 장착에 100만원 이상의 거액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국정원은 “국가 안보를 위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이 시급하다. 선진국과 같은 합법적 감청지원 관련 기술표준 등의 도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간첩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감청만한 수단이 없다. 용의자들은 중국을 경유해 직접 북한과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휴대폰 감청에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재 국정원은 지난 2002년까지 사용했던 모든 도청장비들을 용광로에 넣어 전량 폐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정원의 휴대폰 감청을 허용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국회에 이미 제출된 상태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 등 여야 의원 26명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법률안은 현재 법사위 소위에 계류 중에 있다.
이 개정안은 휴대폰 감청을 가능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갖추는 대신, 감청 허가요건의 강화와 감청자료에 대한 보다 엄격한 관리 등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의원들간 그리고 각 당간의 이견이 커 통과 전망은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를 보는 기계들의 눈은 더욱 선명해지고 정확해지고 있다. 그리고 "국가 안보"라는 이름아래 국가 권력기관의 개인 장악력은 예전처럼 폭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보통신기술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길민권 기자(reporter21@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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