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컴퓨터 연결 ‘BCI’ 첨단 기술, 머스크 투자한 뉴럴링크로 현실화
뇌 이식 컴퓨터가 해킹당할 가능성도 상존...사이보그 시대 보안의 역할은
[보안뉴스 성기노 기자] 1982년 개봉된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서기 2019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SF 액션 스릴러로 사이보그와 인간의 본질과 정체성을 묻는 영화였다. 감독은 사이보그의 등장 시점을 2019년으로 설정했지만 그 시기는 애저녁에 지나갔고 우리는 최근에야 데이터 학습을 통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세상으로 갓 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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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컴퓨터의 고사양 칩을 자신의 뇌에 이식해 ‘사이보그’가 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영화 매트릭스나 공각기동대를 보면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이 나온다. 사이버 영화 속 이야기이지만 이와 비슷한 기술 개발은 현재 진행형이다.
바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기술인 ‘BCI’(Brain-Computer Interface)이다. BCI 관련 기술은 197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됐지만 본격적인 연구를 알린 것은 테슬라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가 2016년에 1억 달러(약 1186억원)를 투자해 설립한 ‘뉴럴링크’이다.
뉴럴링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AI)을 연결해 디지털 초지능(digital super intelligence)을 구현하는 것이다. 뉴럴링크는 원숭이에게 칩을 심어 단순한 게임을 뇌파만으로 조종하는 실험에 성공하며 화제를 모았다.
또한 2024년에는 마침내 인간에게 첫 뇌 이식 칩 임플란트를 성공시켰다고 발표했다. 이 실험 대상자는 단순한 컴퓨터 커서 조작부터 시작해 향후 언어 소통까지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비단 뉴럴링크만이 아니다. DARPA(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도 오래전부터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해 의수를 뇌파로 조작하는 기술을 연구해 왔고, 실제로 손이 없는 사람이 뇌파를 통해 로봇 팔을 정교하게 움직이는 데 성공한 사례도 있다.
또 다른 사례로, MIT 미디어랩에서는 인간의 뇌파를 감지해 이를 AI와 연동시키는 ‘사일런트 스피치 인터페이스’(Silent Speech Interface) 실험도 진행 중이다. 이 기술은 뇌 속에서 생각만 해도 기계가 그 내용을 인식하고 실행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생각이 곧 명령어가 되는 시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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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류는 인간의 뇌에 ‘컴퓨터’를 연결해 ‘블레이드 러너’의 실사판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이보그 시대의 도래는 인간의 능력이 무한 확장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종국에는 뇌에 심어 논 ‘컴퓨터’에 의해 지배를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일까.
일부 전문가들은 사이보그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 그것이 새로운 보안 위협의 서막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뇌파를 통해 기계를 조작할 수 있다는 건, 반대로 그 기계가 인간의 뇌를 ‘역조작’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가능성을 과학자들이나 보안 관계자들은 부인하지 못한다.
실제로 2020년 미국의 한 연구팀은 뇌파 기반 VR 시스템을 활용해 사용자의 ‘무의식적인’ 의사결정 패턴을 수집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사용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뇌파 데이터를 통해 그들의 성향, 감정 반응, 심지어는 비밀번호나 개인 기호까지 추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블레이드 러너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사이보그나 그에게 연민을 느끼는 인간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개념과 그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난제’는 인간과 로봇의 경계에 관한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인 동시에 첨단 과학 기술이 가져올 통제력 상실 시대의 불행한 예고탄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인간의 뇌에 기계를 이식하는 순간, 그 기계 역시 인간을 조율하고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럴 때 인간에게 ‘과학 기술’이나 ‘도구’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인지,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 어느 순간 ‘도구에게 사용당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전개된다면 그 과정에서 보안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그 답은 ‘인간’에 있다. 사이보그 시대가 오게 되면 보안은 기계나 시스템을 지키는 ‘안전 패치’가 아니라 인간을 보호해야 하는 ‘수호신’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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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기계에게 지배당할 위기에 놓인다면 보안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2023년 엘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인간 뇌에 첫 칩을 이식했을 때, 기술은 한계를 돌파했지만 동시에 인간의 사적 사고가 외부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도 함께 나타났다. 만약 인간에게 심어 논 칩이 해킹된다면?
지금으로선 공상과학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얘기이겠지만 머지않아 우리는 우리의 생각 자체가 유출되고, 감정이 조작되며, 기억이 삭제될 수도 있는 시대에 살지도 모른다. 이는 디지털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위협의 문제다.
중국은 AI와 얼굴 인식 기술을 접목한 사회신용시스템을 통해 국민의 일상 행동을 감시하고, 점수를 매기며, 처벌과 보상을 자동화했다. 기술이 인간을 평가하고 규율하는 세계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처럼 기술이 인간의 머리 위에 군림하려 할 때 보안은 기술을 인간 쪽으로 되돌려 세우는 마지막 균형추가 되어야 한다.
보안은 이제 시스템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키는 역할에도 주목해야 한다. 단순히 해킹을 막는 기술에서 벗어나 인간이 과학 기술에 점령당하지 않도록, 그들을 안전한 길 위를 걸어가도록 안내해 주는 ‘인간적인’ 내비게이션이 되어야 한다.
지브리 스타일 그림의 폭발적 인기로 AI 유료 사용자 수가 수직상승 했다고 한다. AI는 이렇게 어느 순간 우리 일상 속으로 단숨에 들어와 버렸다. AI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고 지배하려 할 때 보안은 그 안전의 최후 보루가 돼야 한다. 보안은 ‘사람’이 돼야만 하는 이유다.
[성기노 기자(kino@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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