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문정후 기자] 지난 주 애플이 개최한 2023 세계개발자컨퍼런스(WWDC)는 어마어마한 관심을 끌었다. 애플이 지난 수년 동안 준비해 온 증강현실(AR) 및 가상현실(VR) 장비 때문이었다. 이름은 비전프로(Vision Pro)라고 하며, 발표 자료를 본 사람들은 애플다운 디자인과 성능, 그리고 애플다운 가격에 갖가지 반응을 보였다.
[이미지 = gettyimagesbank]
애플의 비전프로는 안구의 움직임과 손, 음성으로 제어가 가능하며, 2300만 픽셀 디스플레이의 4K 해상도를 자랑한다. 이를 통해 어마어마한 공간감을 사용자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내용을 발표한 애플의 CEO 팀 쿡(Tim Cook)은 “새로운 컴퓨팅의 시대가 오늘부터 시작된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수많은 매체들과 유튜버, 블로거들이 이 비전프로에 대한 게시글을 작성해 발표했다. 애플의 홍보 영상도 그렇고, 각종 매체들을 통해 보도된 내용도 그렇고, 비전프로가 일반 소비자용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기기의 성능이나 강력함을 봤을 때 기업용으로 더 적합해 보인다. 게다가 그 어마어마한 가격도 일반 소비자용이라고 하기에는 수긍이 잘 가지 않는다.
어스튜트애널리티카(Astute Analytica)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세계 기업용 AR 및 VR 시장의 규모는 2030년까지 36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또한 72%의 조직들이 최소한 한 개의 AR/VR 애플리케이션을 도입할 것이라고 하며, 직원 훈련, 디자인, 마케팅, 고객 경험 향상 등의 분야에서 이 기술이 활발히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한다.
현 시점에서 AR/VR 시장을 통솔하고 있는 건 메타의 오큘러스 퀘스트(Oculus Quest)라는 이름의 헤드셋 장비다. AR/VR 시장의 80%나 차지하고 있다. 컨설팅 업체 IDC의 모바일 분야 연구 책임자인 지테시 우브라니(Jitesh Ubrani)는 “메타는 퍼스트파티나 서드파티 콘텐츠를 다양하게 갖추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하나의 거대한 AR/VR 생태계를 이미 형성한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소니와 애플이 도전장을 내민 건데, 의미 있는 경쟁자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합니다.”
애플은 개인 컴퓨터와 모바일 장비 시장에서는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최강자다. 윈도 PC 시장은 2022년 출하량이 18% 줄어들었는데 같은 기간 맥킨토시 컴퓨터는 2% 증가했다. 기업용 컴퓨터 시장에서 맥의 시장 점유율은 2021년 23%였고, 기업용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은 49%를 차지하고 있다.
장비 관리 전문 회사 애디지(Addigy)의 CEO 제이슨 데트반(Jason Dettbarn)은 “개인용 장비로 출시된 애플의 상품들이 요 몇 년 동안 기업용으로서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만큼 비전프로 역시 기업용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애플 장비들 간 연계성을 보세요. 애플 워치나 에어팟이나 이 장비와 저 장비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애플은 이미 여러 종류의 장비로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앞으로 나올 장비들도 다 그렇게 애플의 플랫폼과 연동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비전프로, 애플의 몇 안 되는 실패작 될 것인가?
그러나 데트반은 애플이 AR/VR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현재 AR/VR이라는 기술 자체가 업무용은 아닙니다. 일반 소비자용 기술로 자리를 잡고 있죠.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메타의 장비들도 죄다 집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용해 보면 매우 놀라운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는 데에 놀라기는 하지만 애플 워치처럼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건 또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테크 및 시장 조사 업체 테크널리시스리서치(TECHnalysis Research)의 회장인 밥 오도넬(Bob O’Donnell)은 이번 WWDC 2023에서 비전프로를 실제로 착용하고 사용해 본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뛰어난 기술력과 완성도 자체는 매우 놀라웠다고 그는 말한다. “다만 시연을 위해 나온 제품에는 없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애플이 홍보 시간에 자랑했던 음성 인식 기능도 실제 시연 제품에는 없었고, 인공지능 기술 얘기 같은 건 이번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죠.”
인공지능 이야기가 발표 자료에서 ‘곧 도입될 것’이라는 식으로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게 오도넬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고 한다. “음성만으로도 제어할 수 있는 장비라고 애플은 설명했습니다. 앞으로 그런 기능을 보충하여 넣을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음성을 인식할 수 있는 장비인데 인공지능은 없다? 그러면 사람의 음성 명령을 어떻게 인식할 건가요? 제가 비전프로를 구매했는데 음성 명령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면 짜증이 많이 날 것 같습니다. 시리를 보유한 회사가 왜 인공지능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 점이 상당히 찝찝합니다.”
애플은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족족 성공하고, 온갖 안 좋은 예상에도 대부분 최고의 실적을 거두는 회사다. 그렇지만 실패 사례가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다. 2013년 새롭게 디자인한 1만 달러짜리 맥 프로 데스크톱의 경우 필자는 구매자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시장 반응도 거의 없었다. 시장 분석가들과 애플 팬들은 그 제품을 애플의 쓰레기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실패한 애플 제품은 여러 개 존재한다.
게다가 메타버스라는 신기술은 또 어떤가? AR/VR을 기반으로 한 이 기술은 작년까지만 해도 전 세계적인 기대를 모았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일찌감치 이 메타버스에 뛰어든 기업들은 지금에 와서 조롱을 받고 있기까지 하다. 메타버스에 대한 열기가 확 식으면서, AR과 VR에 대한 관심도 빠르게 식어가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애플은 이번 발표회에서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비전프로를 미리 착용해 본 오도넬은 “애플이 이번에 헛발을 내딛은 것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소감을 말한다. “처음 착용해 이것 저것 만져보면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들이 신기해서 메타버스가 왜 갑자기 그렇게 사라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마감도 좋고 기술력도 좋고 디자인도 좋고, 다 좋은데 ‘이걸 정말 매일 쓰고 다니고, 하루에 몇 시간씩 쓰고 있을 수 있을까’를 묻는다면 저는 아니오라고 말할 겁니다.”
한편, 애플은 비전프로가 정식으로 출시되는 시기를 2024년 초로 잡고 있다.
글 : 셰인 스나이더(Shane Snider), IT 칼럼니스트
[국제부 문정후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