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웹, 암호화폐, 해킹, 피싱... ‘돈’과 ‘성’을 목적으로 한 사이버범죄가 ‘우리’를 노린다
[보인뉴스 원병철 기자] 2019년 11월 한겨레에 ‘청소년 텔레그램 비밀방에 불법 성착취 영상 활개’란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후 SBS의 궁금한 이야기 Y와 JTBC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추가로 n번방 관련 방송을 하면서 대한민국을 뒤흔든 ‘n번방’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넷플릭스의 ‘사이버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바로 이러한 n번방 사건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넷플릭스의 ‘사이버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자료=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지옥은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한겨레 특별취재팀의 기자들과 SBS와 JTBC의 PD, 그리고 n번방에 잠입해 취재를 진행했던 ‘추적단 불꽃’과 n번방 사건을 추적한 경찰들까지 실제 관계자들이 나와 그간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특히, 오프닝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피해를 입히는 지를 실제 텔레그램 대화 형태로 보여주면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와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든 최진성 감독은 시네21과의 인터뷰에서 “관객이 구경꾼이 아닌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참고로 다큐멘터리에 나온 피해자 영상과 사진은 모두 다큐멘터리가 ‘재현’한 것들이며, 최 감독은 “실제 자료를 사용할 경우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새로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통칭 ‘n번방’ 사건은 미성년자 성착취물의 유통에서 시작한다. 사실 미성년자 성착취물은 수십 년 이상 된 범죄지만, 인터넷이 발달하고 영상장비와 영상압축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음지를 통해 계속 거래됐다. 여기에 다크웹과 암호화폐, 그리고 텔레그램과 같은 암호화 메신저가 등장하면서 점차 시장을 넓혀갔다. 텔레그램은 국민 메신저라고 불리던 카카오톡이 통신감청 논란에 휩싸이자 익명성과 강력한 암호화를 앞세워 사용자를 늘였지만, 그 강력한 성능 때문에 오히려 범죄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 4월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군 전산망을 해킹한 육군 대위 사건에서도 두 사람은 텔레그램을 통해 지령을 주고받았다.
텔레그램에서 발생한 성착취물 영상 거래는 2019년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기 시작했다. 갓갓으로 알려진 문형욱이 1번방부터 8번방까지 8개의 텔레그램 대화방을 만들어 피해자들의 영상을 유포한 것이 ‘n번방’으로 알려졌으며, 이 외에도 왓치맨의 고담방, 그리고 박사 조주빈의 박사방 등이 있었다.
특히 n번방은 잔악한 수법과 수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내면서 유명세를 떨쳤고, 조주빈은 취재를 진행하던 한겨레와 KBS, JTBC에 방송하면 피해자들을 해당 건물에서 투신시킬 것이라고 협박하는 등 잔혹성을 드러내면서, 조주빈이 n번방 운영자로 오해하기도 했다.

▲박사는 수익금을 암호화폐로 받았다[자료=넷플릭스]
갓갓과 박사가 피해자를 만드는 수법은 ‘피싱’ 등을 이용해 ‘개인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바탕으로 피해자들을 협박한 것이다. 갓갓은 트위터에서 익명으로 자신의 신체를 드러낸 사용자에게 “당신의 사진과 개인정보가 무단으로 유통되고 있다”며 링크를 보내는 데, 이 링크는 가짜 트위터 로그인 화면을 띄워 개인정보를 탈취한다. 이후 탈취한 개인정보와 계정정보를 악용해 신체 사진과 영상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면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n번방을 모방해 박사방을 만든 조주빈은 ‘고액 알바’를 미끼로 피해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한 뒤, 이들을 협박해 사진 및 영상을 촬영하게 했다. 특히 조주빈은 얼굴을 노출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것부터 시작해 조금씩 요구의 수위를 높이며 피해자들을 협박했으며, 이렇게 촬영된 사진과 영상은 고액의 입장료를 받고 유출했다.
이 둘을 검거하는 데는 보안전문가들이 한 몫 했다. 익명의 해킹그룹 ‘레드팀’은 갓갓이 피해자에게 피싱을 통해 개인정보를 유출한 것처럼, 갓갓에게 URL을 보내 IP주소를 추적했으며, 이렇게 얻은 정보를 제보해 검거하는 데 일조했다.
2020년, 경찰은 텔레그램 ‘n번방’ 관련 사건을 조사한 결과 약 200여명의 가해자를 체포했으며, 갓갓 문형욱은 34년, 박사 조주빈은 42년을 선고받았다. 또 다른 가해자들 역시 재판에 회부돼 대부분 10년 이상의 형을 받았다.
넷플릭스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다큐멘터리면서도 잘 짜인 구성과 빠른 전개로 영화 못지않은 흡입력을 보여준다. 게다가 실제 사건의 관계자들이 나와 시청자들과 대화하는 것처럼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영상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수십, 수백 명의 피해자가 어떻게 n번방의 협박에 말로 옮길 수 없는 피해를 입었는지, 얼마만큼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입었는지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n번방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n번방을 사칭하거나 후계를 자청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이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지고 있고, 아예 텔레그램을 떠나 디스코드나 위커, 와이어 등 또 다른 종단간 암호화 메신저에서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많다. 방통위의 ‘2021년 불법촬영물등의 처리에 대한 2021년도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이용자의 신고에 따라 삭제된 불법 촬영물이 무려 2만 7,587건에 달한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 폭력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라고 지적하고, 박수진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는 수요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집단적인 협업 형태의 범죄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이 사건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범죄이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해야 한다고 해야 다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 범죄를 멈출 수 있는 것은 바로 당신, 그리고 우리인 것이다.
[원병철 기자(boanone@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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