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를 이용한 기술유출사건의 전모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미용의료기기 산업은 기업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함에 따라 현대인들의 외모가꾸기 열풍이 쉽게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신종사업인 미용의료기기 산업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다양한 기술이 접목된 제품이 개발돼 시장에 출시되고 있으며, 남들보다 먼저 개발에 성공해 특허를 내려는 기업들의 경쟁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황이다.
“자네의 손에 회사의 모든 것이 달려있네.”
신현학(가명·52세) 사장은 조상현(가명·33세) 연구개발팀장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조 팀장은 사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그런 믿음을 깨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상현 팀장은 사장의 믿음대로 PLS(페이스롤러)라는 미용의료기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회사의 모든 것을 책임지다
사실 조상현 연구개발팀장이 몸담고 있는 A기업은 직원수가 20명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기업이었다. 애초에는 치과 등에 납품되는 의료기기를 개발·생산하는 업체였는데, 최근 들어 미용의료기기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자 A기업도 관련 제품을 생산하기로 마음먹고 개발에 뛰어든 것이다.
미용의료기기 개발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조 팀장에게 일임한 신 사장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A기업 입장에서는 많은 비용이 투자되는 사업이었고, 또 거는 기대도 컸던 만큼 연구를 담당하는 조상현 팀장의 위상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회사 측의 배려는 미용의료기기의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됐다. 그리고 사장은 마치 상관이라도 모시는 듯 조상현 연구개발팀장의 눈치를 보기 일쑤였다. 물론 이와 같은 장면은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런 대우가 계속되자 조상현 연구팀장은 처음과는 달리 스스로 우쭐대는 모습을 종종 보이곤 했다.
출입금지
“나 이외에는 연구실에 어떤 직원도 출입시키지 마세요.”
조상현 팀장의 특명이 떨어지자 다른 직원들은 연구실 주변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함께 연구를 진행하던 다른 연구원들도 연구실 출입이 불허됐음은 물론이다.
연구가 막바지에 이르자 그는 어떤 때보다 예민한 감정을 드러냈다. 연구팀장의 지위보다 높은 이사들도 연구실 출입이 불허됐으며, 사장도 조 팀장을 방해할까봐 연구실 출입을 최대한 삼가는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연구실은 출근부터 퇴근까지 조상현 팀장의 독차지였고, 그 안에서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A기업이 그토록 염원하던 PLS(페이스롤러)가 개발될 수 있었다.
문제, 그리고 이어진 퇴사
“사장님 뭔가 이상한데요.”
PLS의 상품화를 준비하던 한 연구원이 사장에게 급히 달려와 이렇게 외쳤다.
“무슨 일인데 그래?” 놀란 사장이 연구원에게 되물었다.
“개발 완료된 PLS의 상품화를 진행하는 도중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견됐습니다.”
연구원을 따라 연구실에 들어선 사장. 그 자리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조상현 팀장이 잇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피부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연구를 잘못하는 바람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한 듯 보입니다.”
조 팀장의 이야기를 들은 사장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완성된 PLS가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이 일의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조 팀장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장은 극구 만류했지만, 조 팀장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조 팀장은 A기업의 문을 나섰다.
반전
약 2개월이 지난 뒤 신 사장은 조 팀장의 소식을 신문지면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그 신문에는 B기업의 사장과 환하게 웃고 있는 조 팀장의 사진이 담겨 있었으며, 기사는 ‘신개념 PLS 개발 성공’이라는 큼지막한 제목을 달고 있었다.
그렇다. 조 팀장은 A기업에서 연구개발을 하는 도중에 몇 배의 연봉을 약속한 B기업의 제의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B기업은 A기업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큰 기업이었고, 이는 조 팀장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조 팀장은 그동안 연구결과물을 빼내기 위해 A기업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최대한 이용했다. 연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연구실의 모든 직원들을 내보낸 것도 자신의 기술유출을 최대한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또 작은 중소기업이었기 때문에 어떤 보안체계도 구축되지 않았던 점도 조 팀장이 범죄를 결심하게 된 배경이 됐다. 신현학 사장은 그때서야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이미 배는 떠난 뒤였다.
·관련연구를 진행하기 전 회사측은 연구를 담당하는 책임자와 서면으로 연구결과물에 관한 모든 권리는 회사측이 갖고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와 같은 계약을 하지 않는 경우 연구원들이 연구결과물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최근 기술유출 사례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보안체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특정 직원에게 과도한 회사 내 권한을 주는 것은 보안체계에 있어 가장 위험한 일이다. 또한, 사장이라 할지라도 보안체계에 있어서는 직원들과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PLS(페이스롤러)란?
PLS는 각광받는 차세대 미용의료기기로 피부를 제거하거나 손상시키지 않고, 진피 층에 콜라겐을 생성하는 유도장치다. 인위적으로 피부세포를 마비, 경직, 축소시키지 않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주름 개선효과를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 : 김용석 기자(sw@infoth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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