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가 묻는 건 안전 그 모호한 말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
▲ 시스템이 이렇게 생긴 걸까, 자유가 이런 걸까?
[보안뉴스 문가용]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시스템에 대한 부정이나 시스템으로부터의 탈출을 소재로 한 영화가 꾸준히 나오고 또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 상영 중인 ‘헝거 게임’ 시리즈가 그렇고, 본지 주소형 기자의 정신을 장기간 반쯤 빼놓은 배우, 이기홍이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하는 ‘메이즈 러너’ 시리즈가 그렇다.
보기에 따라서는 선왕이 왕에 오른 과정에서 구축된 시스템 때문에 결국 아들을 죽이고 만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 ‘사도’라는 영화 역시 그런 기류를 탄 작품 중 하나였다. 최근 책이나 영화 모두 폭발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마션’ 역시 기존의 지구라는 환경과 종교를 벗어난 새로운 환경에서의 생존이 오래된 시스템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거대한 은유를 전달했다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어떤 시스템이든 반드시 과거와 닿게 되어 있으므로, 시스템에 대한 의문은 과거에 대한 의문이 되기도 한다. 좀 더 공격적으로 발전하면 이는 과거에 대한 부정에 가까운 의구심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헝거 게임’과 ‘메이즈 러너’의 경우에는 ‘혁명’이나 ‘끝없는 도망’으로 구성된 액션 장면들이 영화 전체를 은유적으로 관통하면서 주인공들이 갇힐 수밖에 없었던 체제에 대한 당위성을 관객들에게 묻고 있고, 왕족 출신도 아닌 어머니에게 당시 법도에 어긋나는 4배를 하며 ‘내 어머니 생신이시다’라고 목 놓아 울던 ‘세자’의 존재는 선왕의 말 그대로 그 자체가 반역이다. ‘마션’은 아예 현 정권이나 체제를 넘어 지구와, 인간사 속에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던 종교에 대해 광범위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올바른 시스템 아래 굴러가고 있는가? 우리의 과거는 올바른가?”
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세대 간의 갈등을 초래한다. 과거에 대한 의문은 곧 전 세대들이 똑바로 했느냐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로서는 철없는 젊은 것들이 내 정체성과 같은 과거에 대해 건방진 물음표를 띄우는 것이고, 현재 세대로서는 그저 과거의 지나간 것이라고 덮어두기엔 지금 피부로 겪고 감내를 요구받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사람을 겨냥하며 병아리와 아재가 싸우다가 다시 ‘이건 시스템 잘못’으로 화합하는 지점을 찾기도 한다. “당신 세대가 그렇게만 안 했어도... 아니, 나라님이 그렇지만 않았어도... 아니, 강대국들이 그렇게 욕심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아니, 세상이 아예 이렇게 만들어지지만 않았어도...”
이런 작품들 속에 흐르는 정서들, 그리고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마주할 때마다 일부 공감도 되긴 하지만 안전과 관련된 매체인 보안뉴스와 시큐리티월드에 몸을 담고 있어서 그런지 언제고 큰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아서 두려운 마음이 더 크다. 살얼음 위와는 또 다른 불안감, 지표면 밑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마그마의 운동이 느껴지는 살벌한 느낌이랄까.
사실상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 중인 IS라는 단체 역시 여러 전문가들의 분석 속에 ‘유럽 사회의 소외 계층이 발한 분노’라든지 ‘일부 무슬림의 교리’가 종종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유럽 사회’라는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나 무슬림의 교리가 그려내는 이상적인 지상의 시스템이라는 개념이 이들의 폭력에 개입했을 여지가 크다. 그리고 시스템에 대한 이런 폭력적인 질문 방법이 혹시 누군가의 교과서적인 본보기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유럽과 미국은 극심한 불안에 떨고 있다. “지금 당장 대중 전부의 동태를 파악해야 해. 지금 영화들 봐. 전복하자고 난리들이잖아!”
테러 후 브뤼셀과 파리의 풍경이 매체와 블로그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다. 실탄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쇼핑몰과 거리를 통제하고 있고 초저녁부터 사람들은 귀가를 서두른다. 말 그대로 전시체제에 준하는 분위기. 안전을 위해 감시와 통제가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것인데, 이는 ‘혁명의 나라’ 프랑스, 그리고 그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벨기에에 있어서는 더더구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안전이라는 커다란 목표 아래 자유를 최고 가치로 두었던 사람들이 비상 시스템 아래 자발적으로 들어갔다는 것과, 그런 시스템 변화가 어찌나 빨랐던지 반론이 거세게 등장할 분위기조차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안전이 이렇게나 설득력 있는, 모든 가치의 우위에 있는 것이었던가.”
OT-OCN이라는, 해킹이 불가능한 시스템을 개발 중인 CAT의 부르스 카버(Bruce Khavar)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 중 “안전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마냥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여태껏 쌓아온 나만의 일상 혹은 지금까지 존속해온 시스템을 그 안전이란 것을 위해 어느 선까지 희생시켜야 할까, 라는 물음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어 불편했던 것이 기억난다. 테러 단체가 60여개 국가에 전쟁을 선포한 때이고, 게다가 이미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사람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부글부글 화약고처럼 끓고 있어 그 정서를 조금이라도 자극시키는 문화 현상들은 대중의 반응을 쉽게 끌어 모으는 때, ‘안전’이란 건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새로운 시스템인가, 기존 시스템의 유지인가. 보수인가 진보인가.”
현재에 대한 불안감으로 과거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게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의심의 기저에 깔린 마음 자체는 미래에 그 방점을 찍고 있는 게 보통이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바라는 마음이 의심도 하고 탐구도 하는 법이다. 즉 ‘시스템에게 묻는다’는 건 그 시스템에 속한 나의 미래를 묻는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메이즈 러너’는 지금 당신의 삶이 누군가 규정해놓은 미로를 헤매는 피곤한 뜀박질 아니냐고 묻는 것과 동시에 ‘계속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가’로 부추기고, ‘사도’를 본 일부 학부모들은 ‘그러게 자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라고 제작자의 의도와는 분명 다르지만 어찌됐든 ‘미래’의 군살을 덧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전은 도대체 무엇이며 모든 가치의 위에 서 있는가, 라는 의문 역시 미래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먼저 ‘안전’이 화두가 되면 보안산업은 반색할 일이다. 그러나 시장의 원리로만 안전을 바라보는 건 사업적으로도 위험하다. 시스템을 유지시키기 위한 안전을 추구한다면 그 반대의 소비자를 놓칠 것이고, 각종 정부사업이 벌어지고 있고 예산 확충이 보도되고 있는 때에 현 시스템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페이스북 등 커다란 기업들도 언론을 통해서는 정부의 감시와 검열에 반대한다고 하지만 뒤로는 정부에게 매우 협조적이라는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런 뒷구멍 사업이 아닌 바에야 현명한 줄타기가 불가능한 때라는 것인데 지금 보안을 말하는 기업들은 안전의 정의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는가? 사실 이는 기자 자신에게 묻는 개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안전을 말하는 기자로서 나는 어떤 방향의 안전을 바라야 하는가? 나의 현장은 어디인가?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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