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도시락] 미드 ‘CSI:CYBER’ 첫 방송을 보고

2015-06-1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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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최신 정보보안 기술과 소식 담으려 공부 많이 한 듯
언젠가 제작진과 인터뷰를 한다면 묻고 싶은, “이거 선전물이지?”

[보안뉴스 문가용] 빅뱅이론, 위기의 주부들, 왕좌의 게임, 프리즌 브레이크, 24시, 히어로 등 일명 ‘미드’라고 하는 미국산 드라마가 상당 수 마니아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를 끌고 있는데, 사실 1980년대와 1990년대만 하더라도 이는 일반 TV 채널에서도 나올 정도로 대중적인 장르였다. 요즘 아저씨들 치고 소싯적에 손목시계에 대고 키트란 이름을 속삭여보지 않은 사람 없고, 파충류라는 것을 교과서보다 브이에서 먼저 배운 사람이 부지기수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CSI 시리즈는 빅뱅이론이나 왕좌의 게임, 프리즌 브레이크처럼 여기저기 패러디가 되고 배우들의 몸값을 치솟게 했던 폭발적인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한 시간 내로 완결되는 에피소드, 수사물 특유의 긴장감과 몰입도, 기발하다 못해 현실 반영에 간간히 실패하기도 하는 사건 해결 방식 등이 언제 누가 봐도 안정적인 수준의 재미는 보장한다. 즉 CSI 전 시리즈를 다 찾아보는 사람은 드물어도 무심코 TV 채널 돌리다 나오면 한 시간 정도 멈칫해줄 만한 드라마라는 것이다. 손에 땀을 흥건하게 맺어주지는 못해도 ‘에이, 한 시간 버렸네’라는 생각은 들지 않게 해주는 정도.

그런 안정감을 바탕으로 상당히 롱런하고 있는 이 수사물 대표 시리즈가 최근 ‘CYBER(사이버)’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즌을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한 시즌이 끝나고 한국에서는 어제 첫 방송을 시작했다고 해서 자리 잡고 앉아 봤는데, 뭐랄까, 느낌이 애매했다. 그렇잖아도 대중들의 참여가 절실하지만 ‘보안과 안전’이라는 주제 자체가 주는 태생적인 따분한 느낌 때문에 전혀 성공하고 있지 못한 정보보안 업계의 기자로서, 대표 대중 콘텐츠에서 본격적으로 해킹과 관련된 콘텐츠를 다룬다고 하니 감개무량하기까지 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영 개운치 않았던 것이다. 전단지에 적힌 행사광고 보고 먼 길 찾아간 음식점의 요리 맛이 엉망일 때 그 집 사장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게 되는데, CSI: CYBER 첫 화를 보고난 느낌이 바로 그랬다. ‘도대체 이걸 보라고 만든 거야 뭐야?’

일단 작가진이 여러 가지 사이버 범죄 요소를 잘 버무려 놓긴 했다. 작년 여름 이슈가 되었던 가정용 CCTV(특히 유아 감시용으로 쓰는), CCTV를 통해 피해자를 장기간 감시해 패턴을 파악하는 행동분석 기법, 달랑 페이스북 한 장면 나오긴 하지만 어쨌든 소셜 엔지니어링 기법, 개발자들의 허술한 소스코드 제작으로 인해 발생한 취약점, 악성코드 부분만 빨갛게 자동으로 바뀌어 경보음까지 함께 친절히 울리는 디버깅 시스템, 흔한 해킹영화에 등장하는, 천재이지만 털 많고 뚱뚱하고 안경을 껴서 주인공은 못 되는 캐릭터, 거기에 피해자 부부의 은밀한 비밀까지 수사과정 중에 알게 되었으나 이것이 개인의 프라이버시일수도 있다는 자각 없이 수사 마무리 후에 적절히 교훈삼아 짚어주는 정보기관 담당자의 그윽하고 오만한 눈빛까지, 이 분야에 있다 보면 접하게 되는 대부분의 일들이 한 에피소드에 다 녹아들어 있었다. 공부 좀 했네, 하는 생각과 ‘이렇게 다 공개하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국제 사이버전까지 가려나...’하는 걱정이 함께 들었다. 물론 1화가 끝나면서 이 걱정은 싹 사라지긴 했다. 다음 편을 볼 생각과 함께.

아무리 드라마의 모든 부분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지만 4개 이상의 외국어가 난무하는 증거자료를 딱 한 번 일부 듣는 것만으로 ‘이건 온라인 유아 경매야!’라고 명쾌한 현장즉결을 내리질 않나, 20자리 암호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 마침 두목의 몸에 온갖 숫자가 문신으로 박혀 있고, 그걸 본부에서 화면을 통해 보고 있던 수사요원이 한 5초 노려보다가 ‘이건 이 순서대로 나열해야 해!’라고 멋있게 외치는데 그게 한 번에 맞아떨어지질 않나, 그 순서라는 것도 그냥 단순 날짜 순서이질 않나... 아, 하는 탄식만 계속해서 나왔다. 주요 용의자들을 멀리서 저격하는 스나이퍼는 분명 먼 거리에서 장총으로 저격을 성공했고 현장에서 오토바이로 도주했는데 그냥 뜀박질로 뒤쫓아간 경찰의 권총에 죽는 장면에서는 내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터스텔라를 또 보고 있는 건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현실을 배제하고, 순수 TV 드라마로서 건질 게 아주 없진 않았다. 예를 들자면 “아이를 지키려고 설치한 장치 때문에 도리어 아이를 잃게 생겼다”라는 대사는 편리함을 추구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보안 취약점 혹은 안전 구멍의 본질을 꼬집는 표현이었다. 더 나아가 편하게 학원 보내고 부모로서 할 일 다했네 생각하는 한국의 부모-자녀 관계마저 되돌아보게 했다. 또, 코드 내에 있는 취약점의 존재를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뿐더러 개발자에게 조치를 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조사 운영진의 존재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나쁘지 않았다. 나쁜 놈과 좋은 놈이 외관부터 너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 약간 클린트 이스트우드표 영화가 생각나긴 했지만, 이 정도야 여타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다 나오는 것이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보보안 전문가의 감수를 받지 않은 게 99% 분명해 보이는, 그냥 심심하고 평이한 수사 드라마 첫 화 정도로만 봐 줄 수도 있을 법한데 왜 기자는 굳이 부정적인 내용 가득한 이 기사를 써야만 하는가? 1) 데스크에서 시켰기 때문이다. 2) 드라마의 기본 시나리오의 허술함에 비해 지나치게 투자를 받는 듯한(즉, 제작비가 충분한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이에 기자들 특유의 기능인 ‘음모론’이 발동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어떤 상태인가? 정부의 여러 정보기관에서 일반 국민을 비롯해 다른 나라의 정보까지도 과도하게 수집하고 있다는 걸 들켰고, 그래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으며 현재 자유법 통과로 어느 정도 법적 제한이 걸린 상태다. 여기에 더해 오바마 대통령은 테러 방지를 위해 ‘첩보를 무조건 공유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첩보 공유란 건 이미 여러 산업에서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이 역시 모이면 어마어마한 정보가 된다. 하지만 이 통과가 쉽지 않아보이자 바세나르 협약이라는 걸 재해석해서 보안업계 전체에 경제적인 압박을 줌과 동시에 취약점 등 정보보안과 관련된 정보가 꼭 정부를 통해서만 유통될 수 있도록 판을 바꾸려 꾀하고 있다. 즉 정보에 대한 소유 권한 및 관리 권한이라는, 아직 경계가 정해지지 않은 땅 위에서 국민들과 ‘영토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런데 국민, 대중이라는 집단이 반드시 현명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2차대전의 경우에서 봤듯이, 현대판 온라인 마녀사냥 사건 등에서 보듯이 의외로 선동에 쉽게 노출된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현대의 간접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는 국민의 의견이 사실상 소수의 대표들 선에서 결정된다. 특성과 제도의 여건을 고려했을 때 정부 입장에서는 시간이 좀 걸릴 뿐 어렵지 않은 싸움이라고 판단하기 충분한 근거가 서점 역사책 안에 무수히 박혀 있다. 그리고 그런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드라마라는 대중 장르를 이용하지 말란 법이 없다.

사이버 공간의 범죄와 수사를 그린 드라마가 야심차게 출발했고, 그 첫 화가 많은 이들의 공감 혹은 공분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강력범죄, 그것도 유아와 관련된 걸 소재로 삼았다는 것, 그리고 드라마 곳곳에 드러나는 ‘수사기관이 가진 정보 활용 능력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 위에서는 농담처럼 썼지만 국민 한 사람의 개인정보에 아무렇지 않게 접근하고 아무렇지 않게 발설하는 주인공,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미국 정부 권위의 상징 링컨 대통령의 동상을 한 시간 내내 받아들이는 느낌은 공익영상물 볼 때의 그것과 상당히 흡사했다. 특히, 민방위 훈련 받으러 갈 때 보는 군대 교육영상이 어찌나 겹쳐보였는지, 기자는 몇 번이나 졸다가 깨서 되감기를 반복했고 그럴 때마다 제발 ‘다음 편에 계속’이라는 자막이 뜨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다행히 기도는 이루어졌고, 아마 2편을 보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이번 시즌의 제작진이 궁금하긴 했다. 인터뷰를 요청해볼까, ‘이거 사실 선전물이죠?’라는 질문을 어떻게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 말할 수 있을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니면, 신경숙 씨뿐 아니라 여러 대단하신 예술가 분들이 표절 스캔들이 일어날 때마다 ‘오마주’라는 단어로 얼버무리는데, 제작진 역시 그저 수사물을 만들다보니 자연스럽게 수사기관 및 정부의 입장에 동의하게 된 것일까. 연락처라도 찾아볼 생각으로 구글링을 해보니 여러 매체의 평점이 나왔다. IMDb 평점 5/10, TV.com 평점 5.6/10, 메타크리틱 평점 45%. 오늘의 교훈, “평점부터 찾아보자.”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http://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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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2015.06.24 16:43

원격에서 프린터 펌웨어 크래킹해서 불내는거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누가 좀 구해주세요.. 푸하하.. 저희 집에 노는 프린터가 한대 있걸랑요..


건달 2015.06.24 16:42

보안 전문가 + 심리 전문가의 캐릭터가 좀 신선하기는 했습니다. 저도 기대가 커서 실망도 쓰나미급입니다. 하지만, 발생가능한 보안사고의 다양한 시나리오 측면에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보다 자다 했는데, 뜬금없이 웃는 일이 좀 있었습니다. 기자님도 보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전 계속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화면이 전반적으로 너무 어둡습니다. 수사물이라고는 하지만, 굳이 그렇게 몰고갈 필요는 없었는 것 같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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