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1과 젊은 시절 지나보낸 세대가 게임하는 방식
오랜 아픔과 인고의 세월 속에 자연스럽게 쌓인 보안 4원칙
[보안뉴스 문가용] 요즘 하도 그쪽 업계 분위기가 뒤숭숭해 망설여지긴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기자가 보안뉴스에 들어올 때 적어 낸 입사지원서에 거짓이 하나 있었다. 바로 ‘취미’란의 내용이었는데 거기에 그냥 공식 국민 취미인 ‘독서’를 ‘게임’ 대신 적어낸 것이다.
묻지마, 원한, 치밀한 계획 등 갖가지 유형의 살인사건에는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어느 날부터 공식처럼 생겼는데, 그게 바로 게임이다. 그래서 게임 관련 커뮤니티들에서는 무슨 대형사고만 나면 ‘또 게임 얘기 나오겠구만’이라고 다들 정확한 예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간혹 이쪽 커뮤니티에 처음 들어온 새내기들은 ‘설마 이번에도 그러려고...’라는 희망에 찬 자조를 예언의 글줄에 섞어 넣기도 하지만 며칠 후 수사관들의 공식 발표 후에는 ‘이번에도 게임 얘기 나오겠구만’ 부류로 빠르게 동화된다. 말 그대로 게임만물창조설의 범람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의료 및 인간 심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추지 못해서 그 어떤 지적이고 과학적인 반박을 할 수 없는 게이머는 마치 요즘의 흡연자들처럼 그 어떤 곳에서도 자신의 취미를 드러낼 수 없게 된다. 직장은 물론 집에서도 대부분은 그렇다. 공정한 것이든 아니든, 정당한 이유에서건 아니건, 아무튼 억압과 유사한 것에 당하는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 얻는 건 억울함과 반항심, 그리고 또 하나 보안에 대한 철저한 습관이다.
기자 역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취미생활을 한 번에 끊어낼 수는 없었고 조금씩 줄이겠다고 식구들과 약속을 했으나 기자의 ‘조금씩’과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조금씩’의 기대치 차이가 너무 커서 충돌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그러나 게임을 좀 했다고 해서 기자 마음에 항간에 알려진 게임의 부작용인 살인충동이나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인 건 아니었음을 밝히고 싶다. 몇 년 전에는 ‘스타크래프트 2’가 새롭게 출시돼 그거 몰래 구입해 야밤에 일어나 소리까지 다 죽여 놓고 하긴 했는데, 너무 몰입한 나머지 갑작스런 아내의 등장에 꼼짝없이 현장 검거되어 기자는 아직도 그 게임을 켜보지도 못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2와의 밀애가 허무하게 끝난 후 기자는 알트탭(alt-tab)이라고 불리는 빠른 화면전환 기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에는 컴퓨터의 사양과 돌아가고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얼마나 리소스를 잡아먹는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기자의 낡은 노트북에서 느릿느릿 돌아가던 스타크래프트 2는 알트탭에 굉장히 늦게 반응했고, 이는 곧 그날 있었던 현장 검거를 피할 방도가 없었다는 걸 뜻한다. 여기서 기자의 보안의식 두 가지가 발로 되기 시작한다. 바로, 1) 지난 실수를 복기해 해결책을 찾는 것과 2) 새로운 방법을 실험해보고 내 시스템(환경)에 적용하는 것이다. 후자를 적용하기 위해 기자는 최신식 게임을 버리고 알트탭에 마치 무슨 인공지능처럼 반응하는 고전게임을 틈틈이 안전하게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으니 현재 대한민국 게임계를 휩쓸고 있는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하도 전국 게이머들이 시끄럽게 굴어서 궁금증이 ‘안전의식’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 아무도 없던 어느 날 기자는 LOL 설치에 성공한다. 그리고 위에 얻었던 교훈을 발판 삼아 곧바로 Play실험을 시작했다. 옵션 조정을 통해 기자의 노트북에서 최적화시켜 알트탭에 금방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함이었고, 몇 판의 귀중한 경험을 통해 가장 알맞은 설정값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기사 쓸 게 있다며 방에 틀어박혀 있는 기자를 수상하게 여긴 아내가 간식상이란 위장술을 동원해 방문을 벌컥 열었을 때 빠른 반사 신경으로 알트탭에 성공을 하긴 했으나, 아직 아내가 의심을 거두기 전 누군가 게임 상에서 시키지도 않은 말을 건 것이다. 알트탭을 눌러서 큰 화면에서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으나 LOL은 사실 작업표시줄 위에 작게 깔려있었고, 누군가 말을 걸면 작업표시줄 위에서 LOL 부분이 노랗게 반짝이게 되는데 이게 하필 아내 눈에 선명하게 띈 것이다. 결국 이제 막 알아가고 있던 LOL도 그렇게 백신 만난 멀웨어처럼 삭제되었다.
그 후로 기자는 몇 가지 보안조치를 추가로 취했다. 요즘의 발전된 애플리케이션들이 가지고 있는 ‘자동 알림 기능’을 다 꺼놓았다. 그게 발전해 ‘자동’의 개념이 적용된 개념을 대부분 수동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자동이 편하긴 했으나 오히려 자동이기 때문에 기능들이 사용자인 기자의 제어권 밖으로 벗어나기 일쑤라는 걸 깨닫기 때문이었다. 조금 불편해도 예상치 못한 경로로 게임이 설치되고 있다 혹은 설치되어 있다는 정보가 유출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즉 여기서 새로운 보안 개념을 습득하게 되는데 바로 3) 자동 기능의 맹신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단 작업표시줄 자동 숨기기 기능은 반대였다.
이렇게 수년 간 보안을 체득하며 살아왔다. 그랬더니 또 거대 신작 소식이 들렸다. 바로 기자 나이대 ‘아재’들이라면 누구나 소싯적 한 번씩 즐겨본 스타크래프트 1의 제작사에서 만든 ‘히어로즈 오브 스톰(이하 히오스)’이었다. 기자는 이미 보안에 자신이 있을 대로 있던 상태였고, 버스마다 붙은 히오스 광고를 볼 때마다 오늘은 설치하고 말리라, 라는 결의를 다졌다. 그래서 심지어 식구들이 다 집에 있던 때, 방문까지 훤하게 열어놓고 게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작업표시줄은 밑에 숨어있었고, 설치 프로그램의 ‘자동 기능’은 죄다 꺼져 있는 상태였다. 원활한 알트탭을 위해 빈 문서 파일 하나를 빼놓고는 그 어떤 소프트웨어도 활성화시키지 않았다. 순조로웠고, 식구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나는 그저 빈 문서에 기사를 열심히 적어나가고 있던 성실하고 든든한 가장이었다. 보안의 승리였다.
......
그러나 어느 덧 기자의 쌓여간 보안 노하우만큼 늙어간 노트북은 히오스를 소화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그 노트북에 게임계의 새로운 대작이 왔다간 사실은 기자의 허무한 탄식과 그 탄식을 듣고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를 외쳐준 아이들의 노래만이 기억하고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익힌 기자의 마지막 보안 개념은 바로 4) 구식 기기가 최신 기기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 는 것이 되었다.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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