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에 해본 자의적인 영화 리뷰
커뮤니케이션, 훈련, 팀웍의 삼위일체가 이루어져야
*이 기사에는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안뉴스 문가용] “Take the hit for the team.” 주인공이어서 그럴 수 있었는지, 영화 속 상황이 급박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 사람이 평소에도 탐탁지 않았는지, 톰 크루즈는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묻는 부대원에게 사실상 그냥 죽으라는 말을 아주 쉽고 덤덤하게 내뱉는다. 아니나 다를까 그 부대원은 죽었다. 탐 크루즈도 죽었다.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다.
▲ “아, 나 또 죽었어!” (출처 : Naver 영화)
이런 무성의한 리스크 관리 및 지도법이 등장하는 건 요즘 뜨고 있는 영화, 툭하면 싸우고 욕하기 바쁜 포털 네티즌이 만들어내는 여론 중 거의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다는 네이버 영화 평점을 무려 8.91이나 기록하고 있는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한 장면에서다.
영화는 군의 홍보담당자였던 케이지가 원치 않게, 또 전혀 뜻하지 않게, 보안담당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외계 생명체인 ‘미믹’이 마치 오늘날의 악성코드나 멀웨어처럼 모든 것을 빠르게 집어삼키고 있는 가운데 인간은 전투 수트라는 보안 솔루션을 개발해낸다. 그리고 그 솔루션에 힘입어 첫 승리를 거두고, 그 승리를 이끈 리타 브라타스키(에밀리 블런트)는 마치 백년전쟁 때의 잔다르크처럼(그러나 강한 영국 액센트를 가진) 혹은 1, 2차대전의 엉클 샘처럼 군의 사기를 북돋는 전쟁영웅이자 얼굴마담의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아직 홍보담당자와 보안담당자 사이에서 정체성을 잃고 왔다 갔다 하는 케이지는 위협에 맞서 인류가 개발한 막강한 솔루션을 잘 다루지 못해서 쩔쩔매다가 유독 덩치가 큰 외계 생명체와 함께 자폭해 버린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덩치에게는 시간을 제어하는 능력이 있었고, 그 피가 케이지에게 흡수됨으로써 케이지 역시 시간을 어느 정도 제어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곧 이어 자신이 시간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죽어서 시간을 되돌리는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게임하다가 죽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때부터 케이지는 자신에게 허락된 그 수많은 시간을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 투자한다. “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건 자살행위다. 그러니 제발 다른 방법을 생각하자.” 누가 신병의 이런 소리를 듣겠는가. 그의 말은 개똥 취급당하고, 심지어 입을 테이프로 봉함 당한 채 전장에 투입되기도 한다. 물론 전사 후 리셋.
리스크를 제일 잘 알고 있는 보안담당자로서는 자기가 알고 있는 바를 조직 내에 알리는 게 급선무다. 케이지만큼 미래를 정확히 꿰뚫어보지는 못하더라도 여러 가지 보고서나 공유되는 정보를 통해 어떤 공격이 어떤 방식으로 들어올지 어느 정도는 예견할 수 있는 보안담당자라면 아마도 그렇게나 정보를 수집한 열심과 열성으로 사장님 방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똑똑똑. 사장님. 똑똑똑. 제 말을 들으셔야 해요. 똑똑똑. 저는 모든 걸 알고 있어요.”
그러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어느 누군가의 자식이기 때문에 ‘미리부터 하는 우려와 걱정의 표현’을 전부 ‘잔소리’로 동치시켜 버린 전적이 있는 우리는, 한 귀로 이런 경고들을 흘려버린다. 그리고 그 말은 꼭 어디선가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생각난다. “아...”하는 탄식과 함께. 하지만 이는 아둔한 청자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설득력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 없이 다급한 심정만 토해내는 화자의 잘못이기도 하다. 대화라는 건 이해를 하려는 노력과 시키려는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성취되는, 의외로 고급스러운 기술이다.
그러나 케이지는 설득법이나 화술을 공부하는 대신 스스로를 훈련시키기 시작한다. 허리가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지면 교관이 다시 시작하라며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독한 훈련이다. 말 그대로 죽기를 불사한 훈련인 것이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분명 사람 머리에 대고 말하는데 이상하게 마이동풍이라는 속담이 생각나는 상황을 계속해서 맞닥트리느니 차라리 내가 슈퍼맨이 되어서 전장을 지배하겠다는 생각은 그러나 이상일 뿐이다.
슈퍼맨은 우주 저 멀리 어느 행성에 외계인이 있을 확률, 그 외계인이 인간처럼 생길 확률, 그 인간처럼 생긴 외계인이 과학도 무지하게 발전시켰는데 멸망할 확률, 그 인간처럼 생겼으나 멸망을 앞둔 외계인이 자식을 살리려고 로켓을 쏴 올렸는데 그게 광활한 우주에선 점보다 작은 지구에 도착할 확률을 모두 합한, 희박하다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희미한 확률을 뚫고서야 겨우 탄생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케이지도 이 과정이 제일 힘들었다. 전장을 지배하기는커녕 훈련 과정에서만 허리가 부러져서 죽고 다리가 부러져서 죽고 리셋을 반복했다. 겨우 전장에 투입되었나 했더니 종횡무진 누비는 것 역시 녹록치 않아서 피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슈퍼맨은 아무나 열정만으로 될 수 없으므로.
보안담당자 역시 이 과정에서 제일 많이 너덜너덜해진다. 아니, 혼자 뭔가 해보려는 단계는 분야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에게나 힘들다. 넘지 못하는 벽 앞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자괴감은 감기와 같아서 만 가지 우울함의 근원이 된다. 사실 보안업계 전체로 보면 이런 슈퍼맨스러운 시도의 때는 지났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업체나 조직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체제를 갖춰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ISEC 2014에 등장한 키워드 중 하나가 ‘continuous monitoring(지속적인 감시)’이었고, 24시간 두 눈 부릅뜨겠다는 보안업계의 당찬 다짐은 ‘대신 나 혼자는 아니고 여럿이 함께’라는 전제를 깔고 가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말이다. “해커들도 협력하고 있다”는 아버 네트웍스의 CF 치우(CF Chiu)의 말처럼, 우리는 혼자 짐을 짊어질 수도, 짊어져서도 안 된다.
역시나, 마치 보안은 담당자 몇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의 몫이라는 듯 케이지 역시 결국에는 아군을 그러모은다. 한시가 급한 클라이맥스 부분, 해당 위협요소의 위치와 공격 방법, 변수에 대한 대처법 등 리스크 관리 교육을 빠르고 급하게 해내는 케이지는 ‘팀을 위해 죽으라(Take the shot for the team)’는 냉혹해 보일 수 있는 자신의 교육 클로징 멘트를 몸소 실천해내기까지 한다. 이는 탈 클레인(Tal Klein)이 본지를 통해 기고한 글 <죽어야 사는 보안>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세계는 구원을 받았다. 겨우내 죽은 둔덕이 봄철마다 부활하듯, 익사했던 케이지는 다시 잠에서 깨어난다. 다시 과거다. 그 시간 속에서는 같이 죽었던 동료들이 여전히 살아있다. 다만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물들이다. 보안업무의 냉혹함은 이것이다. 잘하면 잘할수록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조그마한 실수는 크게 부각된다는 것 말이다. 톰 크루즈가 어떤 결사의 각오로 리타가 스스로 미끼가 되겠다는 걸 허하는지, 스스로는 도망갈 길 없는 곳에서 마지막 폭탄의 안전핀을 뽑았는지, 도대체 누가 알 것인가. 그 모든 일들이 루브르 박물관 지하에서 남몰래 일어났는데.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케이지의 미소는 아찔할 정도로 복잡하다. 세상의 찬사가 없어서 오히려 빛나는, 관객과 케이지만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의 끈이 바로 거기서 발생한다. 그리고 거기에 착잡함은 없다. 누가 알아주든 몇 번이고 죽어가며 할 일을 다 했다는 뿌듯함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보안담당자 누구나 한 번쯤 지어봤을 법한, 혹은 지어볼 법한 웃음이다.
이번 주말엔 거울을 깨끗이 닦고 그 웃음을 연습해보자.
물론 아무나 톰 크루즈의 얼굴이 될 수 없다는 건 알아서들 감안하고.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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