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손승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회장] 1월 6일부터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은 더 이상 특정 기술을 강조하는 전시회가 아니었다. AI는 모든 기기에 자연스럽게 적용된 기본 구조가 됐고, 피지컬 AI는 개념을 넘어 실제 산업과 일상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보안이었다. 보안은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설계·구현·운영 전 과정에 내재화된 전제로 기능하고 있었다. 이번 CES 현장은 기술 경쟁의 무게중심이 성능에서 신뢰를 전제로 한 구현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CES 2026이 1월 6일부터 9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됐다 [출처: 소비자 기술 협회(CTA)]
CES 2026, 기술의 질문이 달라졌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느낀 인상은 CES를 하나의 기술 키워드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었다. 과거 CES가 ‘무엇이 가능해졌는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면, CES 2026은 분명히 달랐다. 이번 전시회가 던진 질문은 ‘이 기술은 얼마나 빠른가’가 아니라 ‘이 기술은 어떻게 산업과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가’였다.
AI는 더 이상 특정 전시관에 모여 있지 않았다. 가전과 헬스케어, 모빌리티, 로봇, 산업 설비에 이르기까지 AI는 모든 기기에 적용된 기본 구조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제 AI는 탑재 여부를 설명해야 할 기술이 아니라, 어떻게 자연스럽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술이 됐다.
소비자 전자제품 전시관에서도 AI는 더 이상 강조되지 않았다. 냉장고는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했고, TV는 시청 맥락을 이해했으며, 웨어러블 기기는 사용자의 건강 상태 변화를 예측했지만, 제품 대부분이 AI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있었다.
이들 제품이 공통으로 보여준 것은 기술의 존재감이 아니라 기술의 자연스러움이었다. AI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을수록 제품의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AI가 차별화 요소에서 기본 전제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AI는 단순한 분석 도구를 넘어 의사결정 구조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었다. 실시간 생체 데이터 분석과 이상 징후의 사전 예측, 치료 및 관리 시나리오 제안은 이미 구현 단계에 들어서 있었다.

▲CES 2026에서 소개된 다양한 전시물 [출처: 소비자 기술 협회(CTA)]
이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기업들이 정확도보다 신뢰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의료 영역에서 AI는 잘 작동하는지보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설명 가능성과 데이터 관리 방식, 운영 안정성에 대한 설명이 기술 소개의 중심에 놓여 헬스케어 AI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운영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CES 2026에서 가장 분명하게 체감한 변화는 피지컬 AI의 현실화였다. 자율주행 기술과 로봇은 더 이상 개념적 시연에 머물지 않고, 실제 환경을 인식하고 상황을 해석하며 판단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들 시스템이 완벽한 AI를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류를 전제로 한 구조와 예외 상황을 고려한 운영 설계, 인간 개입을 전제로 한 안전장치가 자연스럽게 포함됐다. 이는 기술이 성숙 단계로 접어들면서 현실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기조연설에서 “피지컬 AI의 ‘ChatGPT 순간’이 도래했다”라며, AI가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메시지는 전시장 곳곳에서 구현 사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CES는 여전히 기술 전시회였다. AI가 기본이 되고, 보안이 전제가 된 환경 속에서도 CES 2026은 분명히 ‘이제 무엇이 가능해졌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기술의 방향과 구조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면, 그 위에서 구현되는 경험은 또 다른 혁신의 출발점이 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전시 방식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엔비디아는 CES 2026에서 자사 제품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다양한 기업들의 결과물을 중심에 배치했다. 이를 통해 AI 시대의 강력한 컴퓨팅 자원이 단독 제품이 아니라, 어떻게 산업 전반에서 활용되고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컴퓨팅 자원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됐고, 그 수단이 만들어 내는 산업적 결과가 전시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기업 간 협력 사례 역시 이번 CES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엔비디아와 우버, 루시드는 각자의 전문 영역을 결집해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에 근접한 결과물을 선보이며, 단일 기업 중심 접근의 한계를 넘어선 협력 모델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자율주행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 분담과 통합의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국내 기업의 협력 역시 인상적이었다. 삼성전자와 아모레퍼시픽, 트위닛이 협력해 선보인 AI 뷰티 미러는 기술과 소비자 경험, 산업 도메인이 결합될 때 어떤 새로운 서비스가 가능해지는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LG전자와 폴리폼의 협력은 가전과 가구의 경계를 허물며, 가전의 ‘가구화’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들 사례는 복잡해진 기술 환경 속에서 혁신은 단일 기업의 완결된 기술보다, 각자의 전문성을 결집하는 협력 구조에서 더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줬다.

▲손승현 회장이 삼성전자의 3D 모니터를 체험해보고 있다 [출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인상 깊었던 사례 중 하나는 삼성전자가 선보인 안경 없는 3D 모니터였다. 별도의 착용 장비 없이도 입체감을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이 기술은 콘텐츠 소비를 넘어, 설계와 교육, 의료, 제조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활용 가능성을 갖는 기초 기술로 평가할 수 있다.

▲LG가 공개한 투명 디스플레이 [출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LG가 공개한 투명 디스플레이 역시 주목할 만했다. 화면이 사라지지 않고 공간과 공존하는 디스플레이는 정보와 물리적 환경의 경계를 흐리며, 리테일과 모빌리티, 스마트시티, 공공 공간 등에서 디스플레이가 공간의 일부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들 디스플레이 기술은 단기간의 완성품이 아니라, 향후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새로운 경험과 혁신을 만들어 낼 플랫폼형 기초 기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출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이 공개한 보스톤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역시 CES 2026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였다. 현대는 로봇을 단순한 시연용 기술이 아니라, 실제 산업 현장과 생활 공간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존재로 제시했다. 특히 이동과 조작, 인지 기능이 통합된 휴머노이드는 피지컬 AI가 더 이상 특정 기능의 집합이 아니라, 환경을 이해하고 맥락 속에서 행동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휴머노이드는 완성된 제품이라기보다, 향후 제조·물류·돌봄·안전 분야로 확장될 수 있는 플랫폼에 가깝다. AI가 물리적 형태를 갖는 순간, 기술의 문제는 정확도나 성능을 넘어 안정성, 책임, 인간과의 관계 설정으로 이동한다는 점을 이 사례는 분명히 드러냈다.
한편, AI가 개인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방향 역시 CES 2026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페르소나 AI가 공개한 온디바이스 기반 생성형 AI는 클라우드 연결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 기기 내부에서 생성형 AI를 구동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이는 응답 속도나 개인정보 보호 차원을 넘어, AI가 언제 어디서나 사용자의 맥락을 이해하며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특히 생성형 AI가 네트워크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기기 내부에서 작동한다는 점은, AI의 활용 범위를 산업과 공공 영역뿐 아니라 개인의 일상 및 국가 안보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볼 수 있다. 이는 AI가 ‘접속하는 서비스’에서 ‘항상 존재하는 기능’으로 이동할 수 있음을 상징한다.
이들 사례는 공통적으로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AI는 더 이상 화면 속에 머무르지 않고, 물리적 존재로 구현되거나 개인의 손안으로 들어오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기술은 점점 더 삶의 맥락에 밀착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손승현 회장이 ‘베라 루빈’ AI 칩 플랫폼 ‘엔비디아 퀀텀-X 인피니밴드 포토닉스 스위치’ 부품을 살펴보고 있다 [출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보안 트렌드 재해석: 보안은 주제가 아니라 전제다
CES 2026에서 보안은 별도의 주제로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보안의 중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보안이 너무 당연해졌기 때문에 굳이 강조하지 않는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많은 기업들이 보안을 추가 기능이 아닌 설계의 전제 조건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데이터는 최소한만 수집하고, 가능한 한 로컬에서 처리하며, 외부 연동은 제한적으로 설계하는 접근이 일반화되고 있었다. 이제 보안은 기술 요소라기보다 설계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보안은 제품 출시 시점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곳 현장에서도 보안은 업데이트, 운영 데이터 관리, 장애와 사고 대응까지 전 과정의 종단적 개념으로 다뤄지고 있었다. 특히 AI가 탑재된 제품일수록 운영 단계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받아들였는데, 이는 AI가 학습하고 변화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CES 2026에서 보안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보안은 더 이상 경쟁 우위가 아니라, 경쟁에 참여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는 것이다. 즉, 시장은 이제 보안이 뛰어난지를 묻기보다, 보안이 전제된 상태에서 무엇을 구현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국가 정책의 관점에서 본 CES 2026

▲손승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회장 [출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CES 2026을 관통하는 질문은 분명하다. 이 기술을 우리는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표준과 시험인증, 정책의 영역에 있다.
AI와 피지컬 AI가 산업과 일상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공통된 기준이 필요하다. 표준은 기술을 제한하는 장치가 아니라, 기술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공통 언어다. 글로벌 기업들이 표준 선점과 국제 협력에 높은 관심을 보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안과 신뢰는 선언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검증된 신뢰만이 시장에서 작동한다. 특히 AI 기반 제품의 경우 출시 시점뿐 아니라 운영 과정까지 포함한 시험·인증 체계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AI와 피지컬 AI는 이미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다. 정책과 제도는 허용 여부를 논의하는 단계를 넘어, 어떻게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게 작동하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기술과 제도가 분리된 상태에서는 지속 가능한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TTA의 역할은 기술과 시장, 정책을 잇는 신뢰의 기반을 설계하고 검증하는 데 있다. 표준과 시험인증을 통해 기술이 사회로 안전하게 확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기술은 앞서가고, 신뢰는 설계돼야 한다
CES 2026은 기술이 성숙한 이후에도 여전히 무엇이 가능해졌는지를 보여주었다. AI는 모든 기기에 적용됐고, 피지컬 AI는 현실이 됐으며, 보안은 강조되지 않아도 되는 전제가 됐다.
이제 중요한 것은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도입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게 설계하고 운영하느냐다. 기술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는 신뢰를 설계하는 역량이 경쟁력이 되는 시점이다. CES 2026 현장은 그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글_손승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회장]
필자 소개_ 한양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 졸업, 행정고시 제37회로 공직에 입직,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지원단장과 제11대 우정사업본부장 역임, 제13대 TTA 회장으로 재직하며 ICT 기술 경쟁력 강화와 디지털 기술의 신뢰성과 상호호환성 보장에 힘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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