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최근 진행된 이스포츠 최대 행사 ‘롤드컵’에서 한국의 T1이 승리하면서 ‘미움 받을 용기’라는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T1의 핵심 선수이자 ‘리그오브레전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선수 ‘페이커(Faker)’가 외줄타기와 같은 아슬아슬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팀의 승리에 있어 큰 몫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패배의 원흉이 될 법한 과감한 움직임을, 무려 매치포인트 상황에서 겁없이 시도한 것이 많은 이들의 도파민을 폭발시켰고, 게이머들은 그것을 ‘미움 받을 용기’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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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한 식당의 ‘셀프서비스’가 화제다. 먹고 나면 손님이 알아서 자리를 치우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식당은 이를 ‘마무리 매너’라고 지칭하며 ‘머물다 간 자리를 아름답게’ 해달라고 당부까지 했다. 셀프서비스의 새로운 지경을 열기 위해, 혹은 요즘 대유행인 경영 효율화를 추구하기 위해 ‘미움 받을 용기’를 부린 것일까. 이 상황이 전파를 타며 온라인 공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식당 경영은 식당 주인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니 타인이 왈가불가 할 것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고, 마무리까지 손님에게 넘긴다는 건 과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셀프서비스’ 자체는 이미 정착한 지 오래된 제도다. 우리는 식당 손님으로서 어느 밥집을 가더라도 물을 스스로 떠먹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추가 반찬을 셀프로 가져가는 것도, 육수나 소스 빈 그릇을 알아서 채우는 것도, 우리는 익숙하다. 처음에는 이런 것이 생경했던 기억이 있다. ‘셀프’라고 써붙인 안내문의 의미가 뭔지 몰라 일행(아마도 부모님)에게 물었던 기억도 있다. 아마 필자만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먹을 만큼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등 합리적인 구석이 있어 ‘반찬 셀프’나 ‘물 셀프’는 자연스럽게 정착한 듯하다.
그러면 스스로가 치워야 하는 셀프서비스는 어떨까? 자기가 먹은 자리 자기가 치우고 가는 건 얼른 생각했을 때 합리적이니 이것도 곧 정착할까? 나중에 사회가 이러한 방식의 셀프서비스에 대해 다른 관념을 가지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시점에 기자가 생각하기에 이는 합리적이지도 않고, 따라서 정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반찬이나 물을 먹을 사람이 스스로 가져가는 것과 먹은 사람이 스스로 자리를 치우는 것은 다른 영역의 일이기 때문이다.
적당량의 반찬과 물을 알아서 뜨는 건 음식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거기에는 그 어떤 전문성도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자리를 치우는 건 사정이 다르다. 다 먹고 난 자리를 치워 다음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건 그저 휴지 줍고 반찬 부스러기 닦아내는 것과는 달리 ‘위생’과 직결된 일이다. 위생은 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의 또 다른 전문 영역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최소 두 가지 부분에서 전문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하나는 맛이고 다른 하나가 위생이다. 손님의 매너를 언급하며 자리를 치우라고 하는 건 맛과 위생의 전문가로서 자기를 믿고 식당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이다.
‘위생’은 보안에서도 많이 나오는 이야기다. ‘사이버 위생’이라고 해서, 비밀번호를 어렵게 설정하고, 다중인증 옵션을 활용하고, 공공 와이파이 망에서는 민감한 정보 교류를 하지 않고, 아무 링크나 클릭하지 않고, 아무 파일이나 다운로드하지 않고, 아무 앱이나 설치하지 않는 등의 안전한 온라인 습관을 지칭한다. 그리고 이 ‘사이버 위생’이라는 건 모두의 책임으로서 설파되고 있기도 하다. 위 식당의 ‘치우고 가시오’ 셀프서비스가 합리적이지 않은 거라면, 사이버 공간에서 강조되고 있는 생활 습관이라는 것도 비합리적인 것일까? 보안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을 비전문가에게 떠넘기는 것일까?
사이버 보안 업계에서 일반 사용자 개개인들에게 강조하는 안전한 사이버 습관은, 같은 ‘위생’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해서 식당이라는 맥락에서 언급되는 ‘위생’과 같은 것은 아니다. 먼저 사이버 공간과 식당이라는 환경 자체가 상당히 다르다. 대부분 식당은 제법 정돈되어 있으며 깨끗한 상태가 오랜 시간 유지되고, 돈을 낸(낼) 사람들만 입장이 가능하다. 사이버 공간은 ‘정글’에 비유될 정도로 위생이나 질서와 거리가 먼 곳이고, 심지어 입장의 자격을 그리 엄격하게 정하고 심사하지도 않는 환경이다. 굳이 따지자면 인터넷은 식당보다 무료 식사 배급소에 가깝다. 아무나 좋을 대로 찾아와 식사를 하는 배급소라면 ‘위생’은 누구나의 책임인 게 당연하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보안 전문가들은 왜 존재하는가?’ 무료 급식소에도 최소한의 인력이 식탁을 닦고, 바닥을 쓸고 문지른다는 걸 기억하자. 지금 사이버 공간에서의 보안 전문가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워낙 많은 인파가 빠르게 들어갔다가 나갔다가 하는 바람에 그 청소 인력들이 하는 일의 결과가 잘 나타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이 최소한의 위생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어쩌다 자기 자리를 치우지 않고 나가는 사람들의 뒤치닥거리도 할 수 있게 된다. 즉 조금 더 ‘전체의 공간을 치운다’는 개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보안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보안 전문가들이라는 사람이 따로 있음에도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응당 지켜야 할 안전 습관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계속해서 교육되고 있다는 것은 거꾸로 말해 인터넷 공간이 그만큼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저 위의 식당 주인처럼 자신이 맡아야 할 위생 책임을 전문가가 간과하고 있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위생의 책임을 참여자 모두가 져야 할 정도로 위생 전문가(즉 보안 전문가)의 수가 적고 공간을 더럽히는 요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모두를 ‘위생 지키기’에 참여시키려면 이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인터넷이 항상 깨끗하고 안전한 곳인 것처럼 묘사하면서 혹은 인터넷이 위험하다는 설명을 빼놓은 채 모두에게 ‘위생을 지키라’고 강조한다는 건 모순이다. 사이버 공간의 현 상황에 대해 똑바로 알려주지 않으면서 위생만 주구장창 외치면 ‘보안 전문가 뒀다 뭐하게 우리에게 책임을 넘기는가?’라는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것이 현재 많은 일반 사용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의문이다. 심지어 많은 기업의 CEO들조차 보안 실천 사항 이야기를 세부적으로 하는 것보다 CISO에게 모든 할 일과 책임을 위임하고 싶어한다. ‘그 비싼 연봉 받는 CISO가 알아서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일반 사용자들에게 있어 보안 위생 습관을 들이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 있다. 개개인의 귀찮음, 게으름, 하루하루 달라지는 컨디션이나 기분 상태, 예측 불가능한 실수 등 셀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난 보안 전문가가 아니라...’라는 도피처가 존재한다. 책임을 돌릴 수 있고, 핑계댈 수 있는 것이 하나 있기 때문에 보안이 ‘습관’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기억해서 수행해야 할 일’이 된다. ‘보안 전문가가 아니라 나는 괜찮고 실수할 수 있어’라는 마음은, 지금 우리들이 발을 담그고 있는 이 사이버 공간이라는 환경이 얼마나 위험하며 위생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사이버 공간에서의 먼지를 세세하게 알려줌으로써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설명이 듣기 좋은 소리는 결코 아닐 것이다. 따라서 모두에게 환영 받을 소식도 아니다. 하지만 보안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다. 이 사이버 공간이나 인터넷이라는 곳이 얼마나 악의와 협잡으로 가득한지를 말이다. 보안 전문가들만큼 그런 추악한 면을 생생히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 보안 전문가들의 역할은 바로 이런 소리를 발설하는 것일 수도 있다. 위생을 지키세요, 까지만 말하는 게 아니라 ‘왜냐하면 지금 여러분이 다녀온 곳이 한 여름에 방치된 공중 화장실보다 더럽기 때문입니다’까지 완성해야 한다. 거기다가 그 더러움의 세부 내용도 묘사하면 더 좋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미움 받을 용기’가 아닐까.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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