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윤민우 가천대학교 경찰안보학과 교수] 간혹 테러리즘과 관련된 대테러 고도화 방안에 대한 문의를 받곤 한다. 대부분은 보안기관의 관계자가 실무적인 이유로 문의하는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드론과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이 일상화될 가까운 미래에 이러한 첨단기기들을 이용한 대테러 고도화 방안에 대한 어떤 섹시한 답변을 기대한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대테러 고도화 방안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그리고 이는 치안과 안보, 국방과 관련된 모든 유사한 분야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한국의 사회문화와 관련이 있다.
[사진=iclickart]
2010년에 한국에 돌아온 뒤로 많은 치안과 테러, 보안 자문에 참여하고 느낀 인상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는 뭔가를 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실제로 뭔가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건이 발생하면 우왕좌왕할 뿐이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질타한 뒤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새로운 대테러 고도화 방안은 많은 예산을 들여 첨단장비와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담당자는 그로 인해 보상을 받을지도 모르고 용역을 수행자와 시설 개발 업체에는 혜택이 돌아가겠지만 이런 것들이 실제 테러가 발생했을 때는 의도한 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테러는 안보와 치안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저지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주체 역시 사람이다. 사람을 죽이는 총기가 AI로 첨단화된다고 해서 그 총기를 격발하는 사람을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떤 첨단 대테러 장비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테러 정책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어 아쉬움이 크다.
특히 일선에 선 하급 경찰관과 실무 정보요원들, 그리고 병사들과 하급 지휘관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아쉽다. 결정과 판단은 지휘부만 내리고 일선 실무자들은 장기 말처럼 지휘관의 의도대로만 움직이도록 강요된다. 그들에 대한 명예나 존경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고 권한과 책임, 보상은 없다. 단지 사건이 정치적 문제로 발전해 상급 지휘관이 곤란할 책임을 지게 할 뿐이다. 이런 시스템과 환경에서는 아무도 스스로 일하지 않는다. 어차피 월급과 연금은 나오니까.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미국과 서유럽과 한국을 비교했을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문화와 시스템이다. 첨단 장비와 선진 법제의 도입은 부차적인 문제다. 우리와 그들 간에 차이는 거의 없다. 명백한 차이는 사화와 조직의 문화와 시스템에서 나온다. 우리의 유교적 집단주의와 위계 문화와 지나친 권력의 집중화는 대테러 고도화를 어렵게 하는 근본적인 문제다. 일례로 대로변에서 누군가가 총기 테러를 시도할 때 서방 국가에서는 이를 발견한 경찰관이 스스로 판단해 즉각 대처한다. 그는 이 상황에 대처할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같은 상황이 한국에서 일어난다면 아마도 대통령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아마도 수십에서 수백 명이 사상된 이후에.
20년 가까이 테러와 안보를 연구하면서 생각한 것은 대테러 고도화 방안의 첫걸음은 권한과 책임이 일선의 실무자들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보상과 처벌은 합리성과 전문성, 합법성에 기초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의 열망과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그들을 전문성과 합법성, 헌신, 직업윤리 등의 기준으로만 평가해야 한다.
대체로 ‘한국형’이라는 형용사가 앞에 붙을 경우에 서방 동맹국들로부터 어떤 시스템이나 법률 등을 도입할 때 기존의 서열과 집단주의와 권력 집중화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을 때가 많다. 그리고 문화와 전통과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합리화된다. 하지만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더 안전하려면 ‘한국형’이 함의하고 있는 것들을 버릴 필요도 있다.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버려야 한다.
[글_ 윤민우 가천대학교 경찰안보학과 교수(minwoo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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