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문정후 기자] 지구의 여러 지역에서 벌어진 갖가지 사건들 때문에 공급망 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고 있다. 팬데믹의 악영향은 이루 말할 것도 없고,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역시 파괴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IT 분야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기업들의 위기 복구력을 키우고, 물자 부족을 개선시켜 인간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미지 = utoimage]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발생했다. 금융 제재가 시작됐고, 일부 영공이 차단됐으며, 물품 배송 경로가 바뀌었다. 물론 각종 폭격으로 주요 건물들이 폭파하고 사람들이 사망하는 것도 경제적 타격을 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라 전쟁을 치루는 모든 나라들은 적국의 보급망을 차단하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이번에는 예전과 다르게 좀 더 범지구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직접 전쟁을 겪지 않더라도 평시부터 공급망을 관리하고 복구력을 키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현존하는 공급망과, 그런 공급망을 보호한다는 우리의 방법들이 전쟁의 포화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가 생생하게 증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뭔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는 현대의 공급망 운영 전략인 JIT(just-in-time : 적기 공급 생산)가 더 이상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과거 ‘식스 시그마(Six Sigma)’라고 불렸던 운영 체제에서 JIT로 넘어온 것은 크나큰 발전이다. 필요한 과정이었고, 그 때문에 현대의 기업들은 보다 고급스럽고 스마트한 방법으로 생산과 유통을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팬데믹과 전쟁이라는 현실 앞에 JIT도 그 유통기한이 다 됐다는 것이다.
JIT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원자재를 생산 시설로 옮기고, 완제품을 시장으로 배송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딱 필요한 만큼만 공급하는 식의 운영 방식이다.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한 것이라 큰 환호를 받았지만 지난 2년 동안 이 JIT의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무디(Moody)의 분석(Analytics)에 의하면 지난 한 해 팬데믹 때문에 운송 비용이 전 세계적으로 300% 올라갔다고 한다. 갑자기 국경과 항구가 닫혔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JIT에 따라 컨테이너와 같은 각종 자원들도 수량에 딱 맞게만 운용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었고, 이 역시 가격 상승에 큰 요인이 되었고, 컨테이너나 화물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 당분간도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가 전쟁으로 인해 연료값도 무섭게 오르고 있으니, 공급망은 계속해서 위기 상태로 남을 것이다.
그 결과 운송 산업에 의존하는 다른 모든 산업들(사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나오는 물건들의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고무, 방부제, 플라스틱, 각종 용기들의 경우 운송만이 아니라 석유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대단히 빠른 속도로 가격 상승이 이뤄지고 있다. 이것으로 인한 연쇄작용은 각 산업으로 퍼져갈 것이며, 곧 음식 산업과 의료 산업에도 악영향이 있을 것으로 이미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무서운 건 이것이 겨우 시작이라는 것이다. 오미크론 이후 더 무서운 코로나 변이가 등장하거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3차대전 수준으로 확장된다면 전 세계인들이 물자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렇기에 기업들과 정부 기관들은 코로나 사태가 서서히 끝나간다거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동유럽 지역에 국한된 얘기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한 여파가 꽤나 중대하게 다가오고 있으며, 따라서 생존을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현존하는 공급망을 임시방편으로 수정하는 건 정말로 임시적인 조치일 뿐이고, 더 큰 위기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질 것이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공급망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3D 프린터의 역할
이 맥락에서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한 기술이 있으니, 바로 3D 프린터다. 우리는 이미 이 기술을 이해하고 있고 잘 사용할 수 있다. 이미 3D 프린팅 기술로 집들이 건축되고 있고, 그런 집들 안에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냥 원두막 같은 집들이 아니라 사무동과 아파트와 같은 건물들이 이 기술로 빠르게 완성되어 간다. 집 외에도 신발, 사무기기, 인간 장기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이 매일처럼 3D 프린트 기술로 제작된다.
그렇다면 이 3D 프린터와 전쟁으로 갈갈이 찢겨진 공급망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전쟁과 팬데믹 전, 우리가 이미 기업 환경의 상당한 부분을 디지털화 하는 데 성공했다는 걸 먼저 기억하자. 이를 활용해 3D 프린터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한다면, 멀리 외국의 공장에서 물건을 완성시킨 후에 배송을 받는 것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유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3D 프린터가 모든 물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식량은 3D 프린터로 구현할 수 없다. 전략적으로 3D 프린터를 배치한다고 말했지만, 그 역시 쉬운 일은 절대 아닐 것이다. 3D 프린트라는 기술 자체에도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고 말이다. 그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아직 대량 생산에는 한계가 있다.
2) 아직 생산과 완성품에 대한 표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3) 제품 라이선싱과 같은 ‘법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4) 3D 프린팅에 사용되는 원자재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법으로 수급해야 한다.
5) 3D 프린터기들도 고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3D 프린트 전문가들은 현재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들을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산업별 3D 프린트 표준 마련은 굉장히 공격적으로 진행되는 중이다. 각종 품질 인증서 관련 제도 역시 빠르게 논의되고 있다. 전 세계 표준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ASTM 인터내셔널(ASTM International)의 경우 산하에 여러 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이 중 3D 프린트 관련된 조직도 존재한다. 참고로 ASTM은 “산간오지에 물품을 전달해야 할 때, 3D 프린팅 기술이 대단히 유용하다”고 말한 바 있다.
언급한 것처럼 대량 생산은 아직 3D 프린팅이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3D 프린팅은 건물과 같은 복잡한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트너(Gartner)의 경우 “3D 프린팅 기술에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있다”고 했으며 3D 프린트 전문가들은 “수량이 제한된 상황에서의 생산 능력과 유연성은 3D 프린트 기술을 따라올 것이 없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생산 비용도 크게 절감된다는 것도 3D 프린팅 기술의 핵심 중 하나다.
3D 프린트 기술을 적절히 사용하면 현재 막혀 있는 공급망에 어느 정도 숨구멍이 트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기존의 공급망에서 부서진 부분들을 메우고 다시 이어붙이는 노력도 해야겠지만, 3D 프린트와 디지털 기술들을 활용한 새로운 공급망 마련도 우리의 당면과제다. 2016년 PwC는 이미 “미국 제조산업의 2/3가 3D 프린팅 기술을 직간접적으로 활용하는 중”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따라서 3D 프린트를 통한 새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게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리 급진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여태까지 우리는 ‘빼기의 원리’에 기반하여 유통 구조를 만들고 운영해 왔다. 그게 바로 JIT이다. 불필요한 걸 최대한 빼오는 데에 능숙하며, 따라서 3D 프린터를 적재적소에 배치시켜 놓는 ‘증가의 원리’로 돌아선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뿌리부터 박힌 뭔가를 빼내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최근 몇 년 동안 각종 신기술의 등장으로 많은 부침을 겪어 유연해진 IT 전문가들이 3D 프린터를 위시로 한 새 공급망 구축에 앞장서야 한다. 이것이 지금의 IT 업계가 짊어진 시대사명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하지만 구축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닐 것이다. 공급망이란, 수많은 회사와 인력들이 참여하여 만드는 생태계다. 우리끼리 우리만의 새 공급망을 만든다고 해도 참여자들이 없으면 그 공급망은 죽은 것이 된다. 따라서 새로운 공급망을 그저 신기하고 새롭게만 만드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 동안 다각도의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삶은, 특히 지금 시점에 IT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면,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글 : 팜 베이커(Pam Baker), IT 칼럼니스트
[국제부 문정후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