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이 아빠를 만든다 06] 맞는 말과 맞는 말이 부딪혀 충돌이 생길 때

2023-05-2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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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보안은 의외로 산 지식을 다루는 분야라, 그 안에서 발굴되고 전파되는 중요한 원리와 실천 사항들은 사이버 공간에서만 가치를 발휘하지 않습니다. 실생활에서도 보안의 메시지들은 빛을 발합니다. 그것을 아빠의 관점에서 연재 방식으로 풀어보고자 합니다. 2~3주에 한 번 24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너희들이 가끔 그렇게 말할 때가 있어. “아빠는 어른이니까 당연하죠.” 팔굽혀펴기를 연습하는 너희에게 허리를 쭉 펴야 한다고 알려주며 시범을 보일 때에나 빨래에서 물 짜는 법을 알려줬을 때, 뒷산에 힘들게 오르는 너희들에게 힘을 내라고 했을 때 등 가끔 아빠에게 당연하게 되는 게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우리도 아빠처럼 어른이 되면 다 될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 그 둘 다인지, 아무튼 너희는 그렇게 아빠의 어른임을 가리키며 너희의 미숙함을 달래려 하지.


[이미지 = gettyimagesbank]

그럴 때마다 아빠도 하는 말이 있어. 사실 별 생각없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아빠라고 다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야.” 굳이 따지면 너희 말도 틀린 게 아니고, 아빠 말도 틀린 게 아니지만 이런 말을 주고 받을 때 우리가 서로 얻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맞는 말이 오간다고 대화가 되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거짓이 도움이 되는 건 더더욱 아니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맞는 말을 더 맞도록 만드는 것이야. 맞는 말의 순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지.

이를 테면 이런 거야. “아빠는 어른이니까 당연히 된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틀려. 왜냐하면 아빠와 비슷한 나이이지만 너희만큼 팔굽혀펴기를 못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거든. 빨래를 비틀어 짜는 게 아니라 꾹 눌러서 짜는 사람도 어른들 중에 있고, 등산은 솔직히 아빠도 그리 즐기지 않아. 아빠는 어른이 되는 과정 중에 고런 몇 가지를 배울 기회를 얻었고, 그걸 반복하며 훈련한 경험이 있고, 그래서 되는 거지 당연히 되는 게 아냐. ‘어른이라서, 된다’는 게 맞는 말이지만, 그 중간에 생략된 게 참 많지. “아빠는 어른이 되는 동안 여러 번 훈련해서 되는 거지요”라고 말했다면 너희 말은 더 맞는 말이 된단다.

“아빠라고 다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야”라는 아빠의 매크로 같은 답변은 어떨까? 역시 맞지만 틀려. 아빠라서 자동으로 되는 게 참 많거든. 아빠는 ‘나이를 먹는다고 안 되는 게 되는 건 아니니까 지금부터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그러니까 너희들에게 ‘시간을 들여 몸을 힘들게 하며 애를 쓰는 것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 그렇게 말을 하지, 어른이 되는 모든 순간이 고통스럽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야.

예를 들어 아빠 혼자라면 쳐다도 보지 않을 산이지만, 너희들이 보는 앞에서는 단순히 ‘아빠이기 때문에’ 등산가의 자질(능력이 아니라)이 생기지. 솔직히 팔굽혀펴기도 너희랑 같이 하면 아빠 자세가 더 좋아지는 거 너희는 잘 모를 거야. 총각 때보다 잠을 좀 덜 자면서 아침형 인간 행세하는 것도 반쯤은 너희 때문이지. 그런데도 아빠는 너희들로부터 공짜로 얻은 걸 모른 척 하고 열심히 노력하라고만 가르쳐. “맞아, 자동으로 되는 게 있어.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라고 말하면 아빠의 응답은 더 맞는 말이 되는구나.

자, 그럼 대화를 다시 해 보자. 아빠가 너희의 팔굽혀펴기 자세를 교정하는 상황이야. 야, 그렇게 하는 게 아냐, 허리를 일자로 유지해야지, 라고 아빠는 말하겠지. 그러면 너희는 애를 쓰고 시늉을 하다가 잘 안 되는 걸 속상해 하겠지. 이 때 “아빠는 어른이 되는 동안 여러 번 훈련해서 잘 되나봐요”라고 말하는 거야. 어때? 말하면서 이미 ‘난 어려서 못하는 게 당연해’라는 마음이 도무지 생기질 않을 거야. 대화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술술 풀리고 있지. “그래, 맞아. 그런데 그런 훈련을 잘 하면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자동으로 더 잘 돼”라고 아빠가 화답하면, 너희 마음에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희망이 한 꺼풀 덧입혀져. 이건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자포자기식 소원과는 다른 색깔의 희망이지. 우리는 충실한 대화를 완료하게 돼.

맞는 말과 맞는 말이 부딪혀 최악의 결과가 나는 상황은 아빠가 있는 보안 업계에서도 자주 벌어진단다. 모든 보안 실천 사항을 전문가들은 자동으로 잘 지킬 거라는 일반인들의 생각과, 아무리 말해줘도 일반 사용자들은 보안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보안 전문가들의 생각이 대표적이지. 그 외에도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그러면 편지가 너무 길어질 거 같아, 이 두 개만 살펴보자.

대부분의 보안 전문가들이 보안 실천 사항을 곧잘 지키는 건 맞는 말이지만 틀려. 사람에게는 다양한 면모가 있어 보안 전문가들은 전문가들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놀랍도록 보안을 모르는 평범한 일반인이 되기도 하거든. 아빠도 기자이지만 엄마랑 카톡할 때는 맞춤법 하나도 생각 안 하는데, 그런 것과 비슷하지. 보안 전문가들도 애를 써서, 의식적으로 보안 전문가의 정체성을 꽉 붙들고 있어야 보안을 지킬 수 있게 돼.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라, 하루 중 보안 전문가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잘 지켜지는 거지.

그러므로 전문가라는 사람이 보안 실천 사항을 잘 안 지켰을 때 ‘사이비 보안 전문가인가 보네’보다 ‘순간 방심했나보다’가 더 맞는 표현일 수 있어. 그것이 반복되면 ‘보안 전문가로서의 의식을 꽉 붙들지 않나보다’라는 걸 알 수 있고, 그가 좀 더 보안 전문가로서 살아가는 비중을 높이기를 기도할 수 있지. 물론 그 비중이 높아지기 전까지 그 사람에게 우리 회사의 보안 문제를 맡길 수는 없겠지만.

반대로 이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이 보안 수칙을 거의 모든 상황에서 완전히 무시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조언이나 권고 자체를 포기하거나, 강력한 규정으로 만들어 혹독한 벌을 내리는 쪽으로 가지. 물론 보안 실천 사항 무시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건 맞아. 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어. 보안 전문가도 의식적으로 보안 전문가의 정체성을 붙들어야만 지켜지는 게 시시콜콜 보안 수칙인데, 그런 정체성 전혀 없는 일반인이 어떻게 수칙을 지키겠어. 어디서 가볍게 듣고 흘린 내용이 한 개인의 정체성이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일반인이 보안 수칙을 무시하는 건 맞지만, 수칙을 강조했을 때 ‘저 사람이 내 말을 듣고 행동을 바꾸겠다’는 기대 자체가 잘못된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 말을 하지 말까? 아니야. 바뀌네 안 바뀌네 성토나 원망을 버려야 해. 그러면 일반인이 보안 수칙을 안 지킨다는 맞는 말이 더 맞는 말이 돼. 내 힘을 빼고 담백하게, 있는 현상 자체로서만 그 말을 하라는 거야. 보안 규정을 수립하는 자리에서 ‘일반 임직원이 이걸 다 지킬 리가 없어요┖라고 아무런 감흥 없이 말하면 어떻게 될까? 그 뒤에 ‘그러니까 이러 저러한 보완책이 필요할 것 같다’라는 해결 모색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겠지. 감정을 가득 싣는다면 ‘그러니 벌칙을 강력하게!’라든가 ‘당해봐야 알지’라는 생산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은 말들이 나올 확률이 높아.

큰애, 작은애야. 너희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늬들끼리 참 많은 대화를 하지. 이야기가 잘 흘러갈 때도 있지만 아직은 부딪힐 때가 더 많더구나. 분명 한쪽 한쪽의 말을 따로 들어보면 맞는 말인데 말이야. 누구도 거짓을 말하거나, 누구도 틀린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충돌을 피하기 힘들 때가 있지. 그럴 때 ‘차라리 거짓말을 할 걸’, ‘차라리 포기할 걸’, ‘차라리 내가 하고 말 걸’이라는 후회로 넘어간다면 그건 함정에 빠진 거야. 보안에 들어오기 전 아빠가 자주 빠졌었지.

왜 나는 맞는 말을 하는데, 심지어 상대도 맞는 말을 하는데 우리는 대화를 못하는 걸까, 라는 고민이 생긴다면, 그 맞는 말의 순도를 고민해봐. 우리의 말 안의 진리가 높은 순도를 가지면 가질수록 대화는 풀리게 되어 있어. 순도를 높인다는 건 불순물을 제거하는 일이야. 나의 맞는 말 속에 나도 모르게 끼어든 불필요한 것들을 찾아내는 작업이 중요해. 처음부터 잘 되지 않을 거야. 어른이 되어도 훈련이 없다면 자동으로 되지 않아. 너희 같이 예쁜 아이들이 너희를 부모라고 부를 때까지도 그 불순물 찾아내는 걸 능숙하게 해내지 못한다면 꽤나 후회될 거야.

아빠는 너희가 서로를 훈련 도구로 삼아 너희 말의 순도를 높여가기를 권해. 충돌이 점점 사라질 때, 남매의 대화가 깊어질 거야. 그러면 너희는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의 마음이라도 열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때에, 사람 마음을 직접 두드릴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너희들의 대체불가능한 가치가 될 거야. 물론 팔굽혀펴기도 아직 한참 해야겠더라.

-5월 26일, 아빠가-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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