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뉴스 최정식 발행인]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14년 7월 28일, 유럽 전역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협상국과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중심으로 한 동맹국 간에 전투가 여러 지역에서 벌어졌다. 전쟁은 예상과 달리 지루하게 이어졌는데, 이는 ‘참호전’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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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전’은 양측이 상대방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철조망을 참호 앞쪽에 설치하고, 돌격해오는 상대방을 몰살시킬 수 있는 기관총도 참호 곳곳에 배치한다. 이러한 전쟁방식은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일례로 ‘솜전투(Battle of the Somme)’에서만 100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특히 솜전투 첫날, 영국군은 5만 8,000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을 잃었다.
영국군은 대규모의 포격과 보병의 돌격으로 독일군의 방어선을 뚫으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서 고안한 무기가 바로 탱크다. 탱크는 참호, 철조망, 기관총으로 구성된 독일군의 방어선을 효과적으로 제압했다. 당시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괴물 같은 영국군 탱크가 소낙비 같은 독일군의 기관총탄을 뒤집어쓰면서도 굴러오자 독일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주했다. 탱크는 당시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무기라 혁혁한 공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독일군의 사기를 꺾는 데는 충분했다. 이후 탱크는 속도와 화력과 방어력을 높이고 활용 전술도 개발되는 등 점차 발전하면서 육상전투의 중심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 세계 각국은 탱크를 대량 생산하기 위한 설비를 마련했다. 특히, 트랙터를 대량 생산할 수 있던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트랙터 대신 탱크를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이 중고 탱크를 북한에 제공할 정도로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이유도 기술과 생산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바로 이 소련제 탱크로 한국전쟁을 일으켰으며, 전격적으로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전쟁 초기에 소련제 탱크가 없었다면 아마도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기술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신무기는 전쟁의 흐름을 바꿀 뿐만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지역에서 새로운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브렉시트(Brexit) 이후 영국은 제2의 대영제국을 꿈꾸며 새로운 국가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책임감 있고 민주적인 사이버강국’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에 영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와 범죄자를 대상으로 사이버작전을 수행하는 ‘정부통신본부(GCHQ:Government Communications Headquarters)’ 산하의 ‘국가사이버안보센터(NCSC:National Cyber Security Centre)’와 더불어 새로이 ‘국가사이버포스(NCF:National Cyber Force)’라는 조직을 설립했다. 이 NCF는 영국의 사이버역량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최정식 보안뉴스 발행인[사진=보안뉴스]
NCF는 우선 GCHQ와 국방부의 동반관계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책임감 있는 사이버역량을 확보하리라 예상된다. 또한,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협력 등 미국과의 안보동맹 강화도 지속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사이버안보 관련 조직과 인력을 한데 모으고, 사이버공간 관리․운영의 전문성도 극대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경쟁국에 대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양자암호’ 등 사이버보안 분야의 기술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우방국과 협력해 사이버방어체계를 구축하며 사이버 관련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했다.
이렇듯 영국은 ‘브렉시트’와 ‘필립공 서거’로 어수선한 국내 환경을 과감하게 일신하고자, 100여 년 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선보인 ‘탱크’와 같이 새로운 사이버환경에서 전격적이고 주도적으로 디지털 경제를 육성하고, 동시에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를 능동적으로 제거해 나가기 위한 원대한 계획을 마련했다. 우리도 영국의 새로운 국가안보 전략과 정책을 참고해 사이버역량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겠다.
[글_ 최정식 보안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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