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마다 자물쇠 건 것과 같아...SH서울주택도시공사, 2020년 설계분부터 적용 확대
[보안뉴스 양원모 기자] 최근 개봉한 영화 ‘사탄의 인형(2019)’ 리메이크판에서 처키는 더 이상 솜뭉치만 가득한 싸구려 인형이 아니다. 인공지능(AI)이 탑재돼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온갖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 주변에 있는 스마트 기기들은 처키의 손을 거쳐 살인 무기로 재탄생한다. 영화적 과장을 참작해야 겠지만, IoT 해킹의 위험성에 대한 본질을 짚은 흥미로운 설정이다.
IoT 해킹이 위험한 건 그 피해가 오프라인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만약 가장 개인적인 공간인 ‘집’의 제어권이 타인에게 넘어간다면 어떨까. IoT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홈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스마트홈의 월패드를 해킹한 공격자는 집의 조명, 난방을 마음대로 껐다 켜고 CCTV를 훔쳐보는 것은 물론 도어락까지 해제할 수 있다. 해킹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견고한 벽이 필요한 이유다.
▲서울 구로구 항동 하버라인 4단지 전경[사진=보안뉴스]
본지가 찾은 서울 구로구 항동 하버라인 4단지(총 297세대)는 국내 최초로 ‘사이버 경계벽’이 구축된 아파트 단지다. 흔히 아는 사이버 방화벽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방화벽 대신 ‘경계벽’이라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솔루션 납품을 맡은 아라드네트웍스 관계자는 “방어적 기능도 수행하지만,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대 간 들어선 물리적 벽과 같이 독립적 공간을 마련해 줄 존재가 사이버 세상에도 필요했다는 것이다.
사이버 경계벽은 지난해 9월 ‘서울디지털서밋’에서 현대BS&C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주최 측인 서울시가 긍정적으로 검토하며 급물살을 탔다. 시는 SH서울주택도시공사를 통해 항동 하버라인 4단지를 시범 단지로 선정하고 시연회를 거쳐 지난 4월 경계벽 구축을 완료했다. 현대BS&C 관계자는 “(디지털서밋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논리적 보안과 물리적 보안 기술 두 가지를 제시했다”며 ”블록체인이 인프라 등 이슈에 뒤로 밀리면서 경계벽(물리적 보안)을 먼저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스마트홈 시스템은 단지 내 메인 서버를 통해 관리된다. 현행 주택법이 세대의 통신망 공통 사용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만약 메인 서버 방화벽이 무너지면 모든 세대가 해킹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월 ‘사이버 경계벽 구축을 통한 사이버 주거공간 확보’를 골자로 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사이버 경계벽은 비유하자면 현관문(메인 서버 방화벽)에 추가로 방마다 자물쇠를 걸어둔 것과 같다. 중앙에서 외부 침입을 막는 서비스 게이트웨이와 별도로 세대마다 가로·세로 10㎝ 크기의 포인트 게이트웨이(방화벽)를 설치해 내부 보안 기능을 더했다. 포인트 게이트웨이는 △비인가 단말 차단 △가상 네트워크 정책에 따른 서비스 접근 제어 관리 △라우팅 관리 등을 수행한다.
▲하버라인 4단지에 설치된 컨트롤러(위)와 서비스 게이트웨이 모습[사진=보안뉴스]
▲포인트 게이트웨이 모습[사진=보안뉴스]
사이버 경계벽은 비용 면에서도 우수하다는 평가다. 물리적 망 분리를 최소화하고 가상화(VPN)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각 디바이스 별로 망과 스위치를 설치해야 하는 물리적 방식에서, 하나의 서비스 게이트웨이로 다수의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혼합 방식을 채택해 망 구축 비용이 적게 든다. 현대BS&C 관계자는 “2014년부터 스마트 홈 해킹 관련 보도가 꾸준히 이어졌는데 아직 공식적인 피해 사례가 없다 보니 IoT 보안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했다”며 “사이버 경계벽 구축은 (그런 점에서) 예방 차원으로 진행한 것이지만, 국내 최초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이버 경계벽은 올해 말까지 시범 운영을 통해 유저 인터페이스(UI) 및 홈네트워크 시스템과의 호환성 검증·통합 등 점진적으로 기능을 보완할 예정이다. SH서울주택도시공사 관계자는 “2020년 이후 설계분부터 사이버 경계벽 기술을 확대 적용할 것”이라며 “설계 및 시공 여건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사업에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양원모 기자(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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