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영화]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 기도가 과학을 낳을 때

2024-06-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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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믿기지 않는 실제 이야기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윌리엄은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아프리카의 소년이다. 여기서 ‘우리’라 함은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부유한 나라에서 배 굶지 않고 살아가는 나와 당신 같은 사람들이다. ‘전형적’이라 함은 아프리카에 대한 여러 보도나 사진전, 각종 강연회나 모금 활동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그 지독한 가난에 찌들어 있다는 뜻이다. 나와 당신은 절대 알 수 없는, 경험도 해보지 못한.


[이미지=Netflix 캡처]

하지만 윌리엄은 우리가 아는 그 전형적인 아프리카의 소년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라 함은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부유한 나라에서 실수하지 않고 모나지 않게 현상을 유지하는 데에 온 에너지를 소비하는 나와 당신 같은 사람들이다. ‘전형적이지 않다’라 함은 아프리카에 대한 여러 묘사와 표현마다 등장하는 그 포악한 가난 때문에 야자나무 그늘 아래 앉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지독히도 흐르지 않는 세월만 무력하게 지키고 있어야 하는 운명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나와 당신의 시간으로는 그 그늘 안의 깊은 절망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것처럼.

벽지나 페인트 대신 흙을 발라둔 집에서, 물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밭을, 근거 없는 희망만 쥐어짜내 매일 일구는 아빠의 고집 때문에 시험 공부도 못하고 월사금도 내지 못해 결국 학교에서 쫓겨난 윌리엄의 인생 전반부는 암울 그 자체다. 이제 막 학교를 들어가 새로운 공부에 재미를 붙이려는 어린아이에게는 가혹해도 너무나 가혹하다. 백이면 백 현실 앞에 무릎을 꿇었을 테지만 윌리엄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이 놀라운 이야기가 우리에게 당도한 것이다.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은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실화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주인공 윌리엄에 대한 동명의 원작 소설은 이 먼 나라 한국의 독자들도 제법 읽었을 정도고, 그 작고 여윈 말라위의 소년은 테드라는 거대한 무대에 서서 강연도 했으며 그 누구보다 뜨거운 갈채도 받아봤다. 여러 아카데미 단체에서 앞다투어 손을 내민 덕분에 그는 현재 미국에서 대학도 무사히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한 가난한 소년이 도서관에서 낡디 낡은 책을 빌려 과학적인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기어이 실천해 마을 전체를 기근으로부터 구했다는 이 영화는, 단순히 인생 역전 드라마라서 감동과 영감을 주는 게 아니다. 거기에 시대성까지 적절히 더했다. 윌리엄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공감할 만한 메시지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전면에 드러나는 건 ‘종교보다 뛰어난 과학’이다.

윌리엄의 아버지는 기도를 자주 한다. 하지만 상황은 계속 나빠지기만 한다. 어머니는 응답 없는 기도에 결국 화를 내고, 이제 기도하지 말라고까지 한다. 우리는 현대인이니 조상의 관습을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윌리엄의 아버지는 영화의 끝에 이르러 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하며, 자신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것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그의 아들은 과학으로 승리하고 윌리엄의 기도는 멈춘다. 이런 ‘기도 vs. 과학’의 구도는 원작 소설에서도 끝없이 등장하는 테마다. 이것이 이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산 첫 번째 이유다. 지금은 과학이 종교를 말살시키고 있는 시대, 종교를 가진 자들조차 기도를 회피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이미지=Netflix 캡처]

사랑과 정성의 가장 진실된 표현인 기도가 냉철함과 합리성의 대표 주자인 과학에 자리를 내준 건 사실 이상한 일이다. 둘은 서로 다른 종목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간절함, 사랑, 정성 등으로 묘사되는 것이고, 과학은 논리, 근거, 냉철 정도가 어울리는 분야다. 간절함이 절절한 논리도 있을 수 있고, 정성 넘치는 근거도 있을 수 있으며, 사랑 담긴 냉철함도 있을 수 있는데, 굳이 하나가 사라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못된 본능이 둘을 양립하지 못하게 한다. 과학은 기도를 - 윌리엄의 엄마처럼 - 미개의 유산으로 선전하고, 종교는 과학을 마땅한 섭리에 대한 오만 가득한 배반으로 여긴다. 그리고 좋든 싫든 여론은 과학 쪽으로 점점 기울어지고 있다. 현대 물리학의 기초를 닦은 뉴턴이 사실 신학도였다는 게 새삼스러울 정도다.

‘해킹 공격’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을 포괄하고 있다. 해킹 공격의 유형이 많다는 것인데, 그 중에는 기도와 관련된 것도 있다. 스프레이 앤 프레이(spray and pray)라는 이름의 공격이다. 특정 표적 없이 광범위하게 피싱 이메일을 흩뿌려놓고 누군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가장 기초적이면서, 가장 흔한 유형의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표적을 하나 정해두고 걸려들 때까지 무차별적인 피싱 공격을 퍼붓는 것 역시 스프레이 앤 프레이 공격의 일종이다.

광범위하게 미끼를 뿌리든, 언젠가 걸릴 때를 바라며 긴 시간 미끼를 뿌리든, 확신이 아니라 무작위성 성공을 기대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는 공격은 ‘스프레이 앤 프레이’로 분류가 가능하다. 대부분의 피싱 공격자들은 내가 노리는 표적이 반드시 속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는데, 그렇게 따지면 모든 종류의 피싱 공격이 사실 ‘스프레이 앤 프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절대 다수의 사이버 공격이 피싱으로부터 시작하는데, 그렇다면 의외로 많은 유형의 사이버 공격이 ‘스프레이 앤 프레이’에 속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스프레이 앤 프레이 공격’에 대한 정의가 뚜렷하지 않기도 하다.

그러므로 종교가 과학에 내밀려 배척받는 때에 해커들은 마지막 기도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용자들은 그들의 기도가 끊길세라 실수와 해이를 동원해 부지런히 응답해 주고 있으며,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해커가 되어 기도를 업으로 삼고 있다. 이 추세면 언젠가 종교인보다 해커들이 많아질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그런지도 모른다. 윌리엄의 아버지도 기도를 하면서 해커들 정도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면 그의 아내가 기도한다고 타박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역시 스스로를 실패자로 정의하지 않았을 것이며, 아들의 월사금도 충분히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윌리엄의 성취가 기도 없는 과학만의 승리였을까. 기근을 이기게 해달라는 그 오랜 아버지의 기도가 윌리엄의 경이로운 탐구 정신과 절실한 실천력으로서 응답된 것은 아닐까? 진짜 기도는 과학을 배제하지 않는다. 기도로 아이를 낫게 한다며 병원 근처도 가지 않는 부모는 진짜 기도자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또한 진짜 과학자들도 종교를 배척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특정 종교를 따르지 않더라도, 과학으로 알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즉, 기존 이론을 억지로 짜맞추지 않고) 탐구해 들어간다.

도무지 생명을 이어갈 수 없어 모두가 떠나는 동네를 끝까지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소수라도 있어 윌리엄이 시시때때로 도움을 얻으며, 희망조차 사라진 곳인데도 풍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고철들을 쓰레기장 같은 곳에서 적절히 발견할 수 있었고, 전력을 일으킬 정도는 되지만 10대 아이가 고철로 만든 풍차가 부서지지는 않을 정도의 알맞은 세기의 바람이 부는 것을 과학만으로 어떻게 설명할까. 그 풍차가 버티고 버텨서 마을 농사를 살리고 결국 윌리엄의 공짜 미국 유학까지 가능케 했으니, 아버지의 기도는 모두가 예상하는 수준을 뛰어넘도록 이뤄진 것이지 실패로 귀결된 게 아니다. 없어서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이미지=Netflix 캡처]

해커들의 기도는 오늘 하루 동안에만 수십만 건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그들의 힘으로 그들이 원하는 수준에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예상 범주 안에 있다. 눈에 보이는, 딱 그 정도의 성과다. 윌리엄의 아버지가 한 기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도는 윌리엄의 풍차와 같은 거대한 응답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두려워할 것도 아니고, 염려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해커들의 기도의 성패를 쥐고 있는 건 신이 아니라 우리다. 우리가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기로 한다면 들어주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의 얕은 기도를 물리칠 과학적 방법들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근거 넘치는 각종 보안 실천 사항들이 바로 그것이다. 과학으로 기도를 물리친다는 건 아프리카 오지의 감동 실화에 우겨 넣을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매순간 벌어지는 이런 구도에서 필요한 것일 테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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