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군가 지금 ‘사이버’가 뭐냐고 묻는다면

2018-12-1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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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안 해도 될 번역을 해보고 싶은 자의 고민과 상상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북한에서 왔냐?”는 말을 농담처럼 듣곤 했었다. 외국어로 된 전문용어나 줄임말을 무리하게 한국말로 옮기려고 할 때 듣던 지적이기도 했다. 대화 중 영어 단어를 자주 섞어 쓰는 사람에게 한글에도 이런 표현이 있다고 알려줄 때도 가끔 그랬다. 굳이 한글에 대한 사랑이 유난스러워서가 아니라, 아들이 기자가 됐다고 좋아하시던 부모님이 사실은 내 기사를 ‘어려워서’ 읽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충격 때문에 생긴 버릇이었다. 어려움의 근원은 전문분야의 아는 사람만 아는 외국어였다.


[이미지 = iclickart]

지금이야 나이도 들고 조금은 무뎌졌다. 부모님은 더 이상 내 기사가 아니더라도 뉴스라는 것을 접하지 않을 나이가 되셨고, 난 모든 용어를 한글로 바꿀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인정한 상태다. 그래도 젊은 시절의 오랜 버릇은 아직도 남아, 그리고 ‘말걸음마’를 막 시작한 자식들이 등장하는 바람에, ‘이걸 가족들이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한글로 바꾸면 뭐라고 해야 할까?’하는 고민을 할 때가 있다. 그 답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사이버’다.

사전을 찾아보면 ‘가상 공간’이라는 말이 가장 정답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가상 공간’은 ‘사이버 공간’이나 ‘사이버 월드’와 같은 ‘사이버의 수많은 용례 혹은 파생어’와 겹친다. 그렇다고 ‘공간’을 싹 빼고 ‘가상’만을 가지고 가자니 찜찜하다. ‘사이버 보안’을 ‘가상 보안’이라고 해보라. 실재하지 않는 보안, 심지어 가짜 보안이라는 느낌까지 나 껍데기만 있는 CCTV 장식물들이 생각날 정도다. 사이버라는 용어가 정체불명이니 사이버 보안이라고 하지 말고 정보보안으로 하자는 주장들도 나오는 것 같은데, 우리가 말하는 사이버 보안은 이미 정보보안보다 그 범위가 넓어서 교환이 성립되지 않는다.

고민만 있고 답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시간이 많이도 흘러갔다. 그러는 와중에 세상도 변했다. 악법이든 아니든 국가보안법이 아직 유효하고 총부리가 다 거둬진 것도 아닌데, 광화문 한 복판에서 김정은을 찬양하고, EBS가 김정은을 위인이라고 교육하는 때가 되어버렸다. 그런 사람들이 공영방송에도 초청받아 출연하고,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면서 무슨 환영단 회원가입 신청서도 돌린다고 한다. 이념 문제를 다 떠나서, 명백한 위법 행위가 이렇게 버젓이 행해지는 나라였었나. 국보법이 싫으면 정식 절차를 밟아서 폐지한 후에 찬양하면 될 일인데 말이다.

혹시 놓친 소식이라도 있었나 싶어 뉴스를 찾아보면 문과 김은 함박미소에 어깨동무를 하고 있지만, 북한 해커들의 공격 수위는 잘 봐줘야 그대로거나 더 거세지고 있었다. 한국의 가상화폐 거래소를 엄청나게 털어대던 라자루스라는 것들이 이제는 무대를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보다 허술한 나라 금고로까지 확대했다. 게다가 북한은 얼마 전만 해도 모 국회의원과 청와대, 국립외교원장, 국가안보실의 산학협력단을 사칭하다가 발각되기도 하고, 타국 위성에는 북한이 새 미사일 기지를 짓는 모습까지 나왔다. 아니, 평화라며?

우리한테 가장 민감한 세력이 북한이라 북한 예를 들긴 했지만, 다른 나라들도 해킹 행위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중요한 외교적 사안이 있을 때마다 해킹을 통한 사전 정찰이 빗발치게 일어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카메라 앞에선 다들 웃는 낯을 보여주지만 뒤로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캐내간다. 중국은 미국과 사이버 공격 조약을 맺었지만 꾸준히 정보를 훔쳐갔고, 미국은 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자처럼 굴었지만 친구들까지 염탐하는 나라였다. 러시아도, 이란도, 이스라엘도, “나는 모르는 일”, “근거 없는 비난”이라는 고정 멘트를 읊조리는 사람 따로, 사이버 공격으로 뒤통수 가격하는 사람 따로 있다.

G20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악수를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러시아는 네 개 대륙에서 악의를 드러내고 있고, 라자루스로 강력히 의심받는 해커가 87개 조직을 공격했다(물론 북한은 G20에 안 나왔지만). 이란도 핵 제재와 관련해 오랜 기간 미국을 염탐해왔다는 소식이 나왔다. 어떻게 보면 각 나라 수장들은 그저 얼굴마담 역할 전문가인 것 같을 정도다. 가끔씩 TV에 나와서 웃어주고, 뒤로는 해커들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판을 깔아주고... 그러고 보면 연기자 출신 혹은 스타 출신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미남 미녀도 많고.

게다가 다크넷 상황은 어떤가. 모든 게 익명으로 이뤄지고, 접근 자체가 어려워 개방되지 않은 공간에서 드러나는 건 인간의 밑바닥이다. 제이슨 폴란시크(Jason Polancich)라는 다크웹 분석 전문가는 “아무리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크웹 탐험을 권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보게 된다는 건 대단히 고단하고 역겨운 일”이기 때문이다. 가게에서 사탕을 사듯, 사람의 목숨과 각종 아동 포르노물을 아무렇지 않게 거래하는 현장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고 그는 손사래를 친다. 게다가 ‘사이버 공간’이 생기면서 이런 암시장은 더 커지고 있고, 다크웹의 사이버 범죄는 산업화되고 있는 중이다.

‘사이버’를 번역하면 무엇일까? 사전에 영원토록 등재될 정도의 정답은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위와 같이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진짜배기 소식들을 매일 접하는 입장에서, 지금 누군가 ‘사이버 보안’ 혹은 ‘사이버 공격’이 뭐냐고 묻거나, ‘사이버’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속마음’ 정도로 답할 것 같다. 사이버 공간은 국가와 인간의 진짜 속마음이 저장된 공간이고, 사이버 보안은 그런 속마음을 들키지 않는 방법이며, 사이버 공격은 상대의 속마음을 알아내기 위한 수단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속마음을 마음껏 털어놓는 소셜 네트워크가 최근 가장 ‘핫’한 해커들, 광고주들, 그 광고주의 지갑을 열고자 하는 IT 대기업들의 정보 수집 장소 아니겠는가.

자매품으로 ‘뒤통수’가 있다. 뒤통수 보안. 뒤통수 공격. 뒤통수 공간(?). 아, 이건 아닌가...
[국제부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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