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영화&보안] 기존 시대 질서를 깨부수는 영화들 속에서 ‘남한산성’ 다시보기

2024-09-14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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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은 기존의 행동 양식을 바꾸는 일...하지만 강제로 해서는 디스토피아를 앞당길지도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시스템에 대한 부정이나 시스템으로부터의 탈출을 소재로 한 영화가 꾸준히 나오고 또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른 바 디스토피아 장르의 영화들이 대부분 이런데, 시리즈물로까지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메이즈러너’나 ‘헝거게임’ 등이 대표적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선왕이 왕에 오른 과정에서 구축된 시스템 때문에 결국 아들을 죽이고 만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사도’ 역시 그러한 작품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미지=네이버 영화]
어떤 시스템이든 반드시 과거와 닿게 되어 있으므로, 시스템에 대한 의문은 과거에 대한 의구심이 되기도 한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 모두 결국 관람객들에게 묻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올바른 시스템 아래 굴러가고 있는가? 그 시스템들의 기원이 되는 과거들은 지금에 와서도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가?”

과거에 대한 현 세대의 의구심은 자연스럽게 세대 갈등을 초래한다. 과거에 대한 의문은 곧 전 세대들이 똑바로 살았느냐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 앞에 유쾌할 수 있는 노장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반박한다. 개인의 부족함을 돌아보라고. 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만 하기에는 젊은 너희들이 아직 많이 모자란 거라고 말이다. 거기에 대해 젊은이들이 ‘꼰대’니 ‘틀딱’이니 하는 말들을 가지고 와 조롱하기 시작하면서 이 세대 갈등이라는 것은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 번져간다.

과거에 대해 묻고 반성을 촉구하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묻고 촉구한다’는 건 대화로서 진행되어야 한다. 기본적인 대화가 되지 않고 각자의 생각만 상대에게 퍼붓는다면 과거의 반성이나 미래로의 진보는 요원한 일이 된다. 지겹도록 강조되어 오는 그것, 소통이 모든 것의 근간이 된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 한들, 그 의도를 담는 말이 곱지 않으면 설득이라는 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위의 작품들이 꽤나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줌에도 아쉬운 건 대화의 시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메시지를 가진 영화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업물이기 때문에 관객들을 끌어모아야 하고, 그러려면 도파민 자극하는 장면들을 가득가득 채워넣어야 하기 때문인지, 탈출하려는 자와 그것을 저지하려는 자 모두 엄청난 폭력성만 보일 뿐 조곤조곤한 대화라고는 찾을 수가 없다. 이런 영화들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시스템의 전환은 반드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고, 때론 폭력도 불사해야 한다는 인식이 굳어지는 것 아닐까 우려가 된다.

폭력 없이 대화로 기존 체제를 수호하거나 바꾸려는 시도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게 불가능할까? 일단 우리에게는 ‘남한산성’이라는 예시가 존재하긴 한다.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최명길과 기존의 가치관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김상헌의 논쟁이 영화 러닝타임 내내 이어지지만, 우리는 어느 한쪽의 편을 쉽게 들 수 없기에 서로의 다음 말들이 궁금해지고, 그것이 영화를 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물론 이 영화도 호불호가 갈리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작품 외에는 ‘대화로 설득한다’는 다른 사례가 떠오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화의 과정을 영화로 흥미진진하게 담아낸다는 건 적잖이 힘든 일인 게 분명해 보인다.

보안은 예나 지금이나 설득의 분야다. 아무리 봐도 보안 전문가나 보안 기자나 보안 콘텐츠의 궁극적인 목표는 ‘설득’일 수밖에 없다. 설득을 통해 주입해야 할 메시지는 ‘우리의 과거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우리 안의 꼰대를 찾아내라는 것이기도 하다. 해킹 사건이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여기고 살았던 과거, 그 공격 좀 당해봐야 별 일 아니라고 여기는 과거, 그래서 각종 보안 규정이나 실천 사항을 남몰래 어겼던 과거, 보안이라는 안전 장치 없이 리스크를 무작정 감내하는 걸 낭만으로 여겼던 과거...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사고방식과 행동 지침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게 보안 분야가 설파해야 하는 내용이다.

딥페이크가 판을 치니 소셜미디어에 더 이상 자기 얼굴이나 자기 가족 사진 올리지 마세요, 일상을 지인들과 공유하는 건 좋은데 너무 세세하게 할 필요는 없어요, 혹시 모르니 공공 와이파이로는 중요한 계정에 로그인하지 마세요, 귀찮아도 비밀번호를 어렵게 세팅하세요, 엄청난 상품을 공짜로 준다며 행사할 때 그쪽에서 받아가는 게 뭔지 꼼꼼하게 따져보세요, 앱을 다운로드 해서 설치할 때 개발사 정보까지 좀 찾아보고 하세요... 설득을 통해 심어줄 새 시대의 행동 양식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무작정 다가가 법전을 들이밀며 ‘이런 저런 규정에 의거하여 당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알립니다, 이런 저런 벌칙을 각오하세요’라며 접근하는 게 대부분 보안 담당자들의 방식이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좋은 말로 하면 들어먹지를 않으니까. 저 높은 사장님들은 물론 저 아래 말단직원들까지도 보안 수칙 어기기에 한 마음으로 동참하니까. 규정을 근거로 말하면 말을 길게 끌 이유도, 감정싸움으로 사태가 번지는 것을 예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설득의 시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 마음을 사지 못한 채 규정만으로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려 한다면, 그래서 그 변화가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규정을 엄격히 했더니 사람들이 보안 수칙을 잘 지키고, 회사 보안이 전반적으로 강력해졌다는 사례들이 누적되면 어떻게 될까? ‘안전’을 위해 모든 것을 규정으로 정할 것이고, 결국 우리는 규정에 의해 옴짝달싹 못하는 환경에 갇히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보안 전문가이든 아니든,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그런 게 아닐 것이다.

도무지 듣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로 설득이 무슨 의미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백번 천번 타당하다. 하지만 그들의 귀가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사용자들은 훨씬 보안에 대해 마음을 많이 열고 있다. 설사 지키지 않더라도 ‘보안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론하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 말하고 또 말하고, 설득하고 또 설득하면, 아주 천천히라도 귀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대에는 울며 씨를 뿌리는 것에 그칠 수 있지만, 후대에 기쁨으로 열매를 거둘 수 있을지 누가 알까. 급할 때 규정집을 들고 반협박조로 이야기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늘 설득하려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게 온갖 사이버 위협들이 창의적으로 만들어지는 때에 보안 전문가들의 진짜 할 일이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저작권자: 보안뉴스(www.boa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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